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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광장-김준형 칼럼니스트] 닭의 재판… 코끼리 재판…
유태인의 지혜가 담긴 탈무드에는 닭이 사람을 죽인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닭이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를 쪼아서 아기가 죽었다. 사람들은 닭을 잡아두고 재판을 했다. 증인들이 나와서 증언을 했고, 닭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닭은 처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동물재판 이야기가 나온다. 태종 때 일본이 코끼리를 선물했다. 그 당시 코끼리는 별 쓸모도 없었을 뿐더러, 엄청나게 먹어대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어느 날 관리가 코끼리를 욕하면서 침을 뱉자, 화가 난 코끼리는 관리를 밟아 죽여 버렸다. 조정에서는 코끼리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코끼리를 처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렇게 해서 코끼리는 전라도의 외딴 섬으로 유배를 떠났다. 그런데 이 코끼리가 외로움을 많이 탄 모양이다.

당시 전라도 관찰사는 ‘코끼리가 먹이를 먹지 않아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라고 상소를 올렸다. 이를 불쌍히 여긴 태종은 다시 코끼리를 육지에서 기르도록 했다. 그런데 코끼리를 키우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번갈아가며 코끼리를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세종 때, 코끼리는 또 한 번 말썽을 일으켰다. 충청도 공주에서 먹이를 주던 사람을 죽인 것이다. 세종대왕은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보내라. 제발 병들어 죽게 하지 말라.’고 명했다.

결국 코끼리는 다시 유배를 떠났다. 실록의 코끼리에 대한 기록은 여기까지이다. 두 번씩이나 사람을 죽였지만, 코끼리는 끝내 처형을 면한 것이다.

탈무드의 이야기나 조선왕조실록의 이야기는 모두 사람을 죽인 동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처분이 어떻게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르고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유난히 관대하다. 어린 아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서는 ‘철이 없어 저지른 짓’이라며 관대하게 바라본다.

범죄도 맑은 정신이 아니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질러지면, ‘주취감형’이라는 이름으로 관대하게 처분된다. ‘주취는 범죄의 변명이 될 수 없다.’는 미국이나 영국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조선시대 코끼리에 대한 처분도 이런 정서의 바탕에서 이루어 진 것 같다. 코끼리가 인간의 도리를 알 수 없으니 사람을 죽인 것을 벌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고향을 떠나 외롭게 살고 있는 코끼리를 동정까지 한 것이 아니겠는가?

최근 북한산 석탄 수입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수입업자는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북한산이라는 것을 몰랐던 남동발전과 금융기관은 처벌을 면했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이 아니다. 유엔에서 ‘안보리 결의 위반국’으로 지정되는 것이 아닌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이런 국제적인 제제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외국 사람들은 모르고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우리처럼 관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코끼리 재판’이 아니라 ‘닭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관계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concent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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