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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쥐와 인간’ 한국 초연…고전의 맛은 여전했다
[사진은 연극의 장면들]
-80년 전 이야기에 관객 고평가 이어져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 80여년이 지났지만, 고전(클래스)가 관객에게 전하는 감동은 여전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생쥐와 인간’은 소설 출간과 브로드웨이 초연 80여년이 지난 2018년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지난 7월 24일부터 대학로의 TOM 1관에서 공연중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시기, 일자리를 찾아 미국 서부의 어느 목장으로 가게 된 두 친구 ‘조지’와 ‘레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경제구조의 모순과 계층간의 문제를 날카롭지만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연극 ‘생쥐와 인간’은 지금까지도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브로드웨이 클래식 연극이다.

소설이 출간된 해와 같은 1937년 11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2014년까지 3번이나 리바이벌 됐던 공연으로, 특히 2014년에는 유료점유율 97.2%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명작의 힘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클래식 작품의 한국화(韓國化) 연극 ‘생쥐와 인간’은 미국의 정서를 담을 수 밖에 없는 원작을 최대한 한국 관객과 시장에 맞는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먼저 10명의 등장 캐릭터를 7명으로 줄였다. 자본가,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 사회의 각 계층을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한국 관객에게는 낯선 흑인 캐릭터가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제외됐다. 대신, 똑똑한 조지와 어리숙한 레니처럼, 대비되는 캐릭터들을 1인 2역의 캐릭터로 변화시켜, 원작 공연보다는 캐릭터의

대비를 한층 강조했다. 늙고 쓸모 없어진 일꾼 캔디와 젊고 거친 일꾼 칼슨이 대표적이다. 유일한 여성캐릭터 컬리부인 역시 변화되어, 원작과는 다르게 자신의 꿈을 개척하려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화시켰다.

무대 세트는 상당히 공들여 제작됐다. 목장의 분위기를 내는 대나무를 소재로 제작됐고, 무대 바닥에는 커피 원두가 깔려, 배우들이 움직일 때마다, 마치 어느 거친 목장의 자갈밭을 밟는 듯한 느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은은한 커피향은 덤이다. 배경 역시, 공연의 주요 장소인 밤하늘, 저녁하늘, 새벽 등의 느낌이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요소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조명과 어우러져 브로드웨이 공연 못지 않은 효과를 만들어 냈다. 브로드웨이 공연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음악’이다. 비올라와 피아노로 구성돼 매 회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은 극의 분위기를 더 해주며 공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총 10여 곡이 음악이 사용되고 있으며, 캐릭터들과 장면들의 테마곡들이 있다.

[사진은 연극의 장면들]

왜 지금 ‘생쥐와 인간’인가?

연극 ‘생쥐와 인간’은 ‘대형 뮤지컬 위주의 공연시장에 대학로의 작은 연극, 그것도 고전(古典)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한국 공연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모두 공연을 관람한 후라면 이 의구심은 말끔하게 사라진다.

공연이 미국의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우리는 1998년 IMF 이후 경제 위기 이후의 삶을 살고 있다. 두 시대가 다르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희망’과 ‘꿈’ 때문이다. 극의 주인공인 조지와 레니의 꿈은 그들만의 작은 목장을 갖는 것이고, 늙고 쓸모 없어져 목장에서 쫓겨날까 두려운 캔디는 죽을 때까지 이런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 때의 이런 희망이 지금의 우리와 다를까?

공연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구조와 경제적 모순 속에 꿈과 희망을 잃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대 태반이 백수인 사회는 이제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30대는 벌써 정리해고를 걱정하고, 40대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걱정하고, 50대는 자신의 자리가 없어진 사회에서 20대들과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 그 때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정말 이룰 수 있느냐고 관객에게 묻고 있다.

이러한 주제로 노벨문학상과 퓰리쳐상을 받은 작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이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금서(禁書)로 지정돼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공연은 작지만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 어떤 대형 공연보다 작지 않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소설이 출간된 후, ‘생쥐와 인간’은 연극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영화와 오페라 등으로도 제작됐으며, TV드라마와 만화영화 등에도 캐릭터나 소설의 일부 대사가 인용되며 영향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80여년의 기간 동안, 촌스럽고 구태의연한 작품으로 평가 받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작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클래식의 힘의 아닐까.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겁다. 예매처 평균 평점은 9.1로 초연되는 클래식 연극으로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공연을 보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상황의 다른 대사가 주는 슬픔…”, “너무 슬픈 동화” 등의 후기를 남기고 있다. 2018년에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 역시 1937년의 작품이 주는 감동과 메시지가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극 ‘생쥐와 인간’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도 ‘클래스의 영원함’을 보여주고 있다.

jycaf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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