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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100세 시대’에 ‘100년 기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

“100년 기업을 만들겠다”

신년사, 혹은 창립기념일 등에서 유독 자주 들리는 구호면서, 최근 오너 경영인들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단어다. 지속적 생존이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창업정신과 혁신을 바탕으로 가업을 이어나가겠다는 오너 경영인들의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구호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장수기업이 기업인들의 ‘목표’이자 ‘꿈’이 돼 버린 경영 현실에 대한 하소연이어서다.

실제 기업들의 바람과 달리 우리나라의 100년 이상 장수기업 수는 7곳에 불과하다. 같은 기준으로 장수기업이 5만개가 넘는 일본과는 확연히 대조된다.

장수기업의 화두는 최근 기업들의 3,4세 경영 승계와 함께 본격적으로 조명받고 있다. 중소기업의 가업 상속과 대기업들의 승계 과정에서 지나칠 정도록 가혹한 상속 제도가 도마에 오르면서다. 실제 징벌적 수준의 상속세로 인해 기업가들이 상속을 포기해, 기업의 맥이 끊어져버리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상속세율은 최고 50%(할증시 65%)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세율(26.3%)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높은 상속세율의 부작용은 세간의 인식 보다 막대하다. 가업 승계를 앞두거나 진행 중인 기업들의 경영권 위기로까지 번진다.

이우현 OCI 사장은 지난해 아버지 고(故) 이수영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지분을 상속 받으면서 높은 상속세로 인해 상속 지분을 매각해 최대주주 지위를 내려놓고 3대주주가 됐다. LG그룹의 구광모 회장도 고 구본무 회장의 지분(11.28%)을 넘겨받는데 따른 상속세가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너 경영인은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는지 여부가 향후 기업의 경영 안정에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면서 “상속세 부담으로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추후 경영권 분쟁 발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 경영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상속세로 인해 기업의 맥이 끊기는 사례가 적잖다. 지난 5일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장수기업 현황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중 업력이 50년 넘는 장수기업은 0.19%에 불과했다. 1000곳 중 2곳 만이 50년 이상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이 또한 가업승계를 포기하게 만드는 징벌적 수준의 상속세가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상속세 법률의 제정 취지는 부의 되물림을 근절하는 데 있다. 하지만 상속세를 통한 부의 불평등 해소 효과는 미미한데 비해, 고용과 성장의 주축인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정적 영향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추이로 봐도 국내 현실과는 반대로 상속세 감축ㆍ폐지는 국제적인 흐름이다. 2000년대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7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했다. 2014년에는 체코와 노르웨이가 상속세를 폐지했다.

법안이 당초의 입법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역효과 만을 양산해 낸다면 법안은 개정되는 게 마땅하다. 전문가들 또한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모은다.

실제 우리의 상속세제는 이중과세의 위헌 소지를 지닌다. 과거 조세 투명성이 미약한 점을 감안해 우리나라는 소득 형성 과정에 세금을 내지 않았을 것을 가정해 상속할 때 세금을 더 내도록 하는 논리로 상속세율을 소득세율보다 훨씬 높게 설계했다.

상속세제 개편이 장수기업의 만능해법이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기업들이 꿈꾸는 ‘100년 기업’의 여정에는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격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끊임없는 도전하고 혁신을 이뤄가는 기업가 정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상속세가 걸림돌이 돼 키를 잡아보지도 못한 채 포기해야하는 현실은 개선되는 함은 분명하다. 불합리한 상속세제 또한 정부가 최근 강조하는 또 다른 규제가 아닐 지 곱씹어봐야할 때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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