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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 김홍도는 왜 10세 순조에게 ‘안빈낙도’를 그려줬을까

논밭, 산, 일하는 농부, 낚시꾼 묘사
부왕 정조의 뜻 이으려던 순조 감정정화?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김홍도는 우리 나이로 쉰 일곱이던 1801년, 열 한 살 된 순조대왕이 천연두라는 병마에 시달리다 쾌차하자 그림을 선물한다.

당시 나이 쉰 일곱이면 할아버지이다. 그 시대 조혼을 감안하면 손자뻘 나이의 임금에게 준 선물이다.

그림의 내용은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짜리, 만 10세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1800년 즉위하자마자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허울뿐인 왕이었던 순조는 소년이지만 그래도 아버지 정조가 못 다 이룬 뜻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병 치레가 적지 않았고, 수렴청정, 파당정쟁 과정과 세도정치 기미를 지켜보면서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김홍도가 그린 이 그림은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로, 8폭 병풍 그림 중 한 점이다.

‘삼공불환’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삼공의 높은 벼슬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로, 송나라 시인 대복고의 시 ‘조대(釣臺)’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경물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배치한 사선(斜線) 구도를 활용해 역동감을 주었고, 강을 앞에 두고 산자락에 자리한 큰 기와집과 논밭, 손님치레 중인 주인장, 심부름하는 여인, 일하는 농부, 낚시꾼 등 여러 요소를 짜임새 있게 그려 넣어 전원생활의 한가로움과 정취를 표현했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인물들의 모습, 실물 그대로를 묘사한 듯한 화풍이 돋보이며, 오랜 작품 생활을 통해 숙련된 자유분방한 필치로 인해 화면 전체의 완성도를 높여 준다.

이 그림은 소년 임금 순조를 힐링시키는 것이었다. 앞으로 순조에게 닥쳐올 숱한 고난을 김홍가 예측하고 감정정화(카타르시스)를 목적으로 그려준 것으로 해석된다. 자칫 임금에게 안빈락도를 권할 경우 대역죄로 오해받을 수 있기에 ‘감정정화’로 보는게 타당하다.

정조의 후궁 소생(차남)인 소년 임금 순조는 일찌감치 만 13세의 나이로 친정(親政)에 나선다. 외척세력 김조순의 반대편에서 서서 많은 개혁을 도모한다. 암행어사 파견, 국왕 친위부대 강화, 하급 친위 관료 육성 등을 도모했지만 외척세력의 국정농단과 권력투쟁을 넘기에는 버거웠다. 결국 흉년과 반란이 겹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이 그림을 그렸던 말년의 김홍도는 소년 순조가 앞으로 겪을 고난들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문화재청은 24일 이 그림에 대해 보물 지정 예고했다. 그림에 담긴 고귀한 뜻에 비해 보물지정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느낌도 든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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