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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쌍릉 인골, 백제 무왕 ‘서동’임이 더 확실해졌다”
 
정밀분석 대상 쌍릉 인골 머리부분(왼쪽)과 다른 부분.

“7세기 사망한 큰 키의 귀한 남성” 확인
국내외 민관 연구기관, 공동분석 결과 발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전북 익산시 석왕동의 쌍릉이 ‘서동’으로 잘 알려진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는 학설이 더 유력해졌다는 인골 분석결과가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한 결과, 키가 고서에 나타난 무왕의 묘사와 비슷하고, 인골의 매장 시점 역시 무왕 사망기와 대체로 일치한 점, 최고지위가 아니고는 쓰기 어려운 석재와 목관 등을 근거로 이같이 밝혔다.

연구소측은 18일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인골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은 백제 시대 무덤으로,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 가량 떨어져 있다. 쌍릉의 존재는 ‘고려사’에서 처음 확인되며, 고려 충숙왕 때(1327년) 도굴되었다는 사건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부터 고조선 준왕이나 백제 무왕의 능이라는 설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무왕은 ‘대왕폐하’로 불렸다.

쌍릉 근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익산시와 공동으로 쌍릉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석실 끝부분에서 여태까지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없던 인골 조각이 담긴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100년 전 일제가 발굴하면서 다른 유물들은 유출한 반면, 이는 꺼내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102개의 조각으로 남아있던 인골을 국립문화재연구소, 가톨릭의대 응용해부연구소, ㈜라드피온, 미국 베타연구소, ㈜퓨전테크놀로지 등 국내외 민관 전문기관들이 합동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이었다. 팔꿈치 뼈의 각도(위팔뼈 안쪽위관절융기 돌출), 목말뼈(발목뼈 중 하나)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먼쪽 뼈 부위)의 너비가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하여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추정됐다. 훨씬 후세대에 속하는 19세기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키가 161.1㎝인 것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큰 키이다. ‘삼국사기’는 무왕에 대해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추정됐다. 목의 울대뼈가 있는 갑상연골에 골화가 상당히 진행되었고, 골반뼈 결합면의 표면이 거칠고, 작은 구멍이 많이 관찰되며, 불규칙한 결절이 있다.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광범위특발성뼈과다증), 다리와 무릎의 통증(정강뼈와 무릎뼈의 척추외골화)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엉덩뼈능선)에 숫자 ‘1’ 모양으로 골절되었다가 치유된 흔적이 있다. 어긋나지 않아 타격보다는 낙상 등 때문으로 판단된다. 치료기간이 3개월 정도 되므로, 직접적인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되어 인골의 주인은 7세기 초중반의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추출한 콜라겐의 탄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 벼, 보리, 콩 등의 섭취량이 높았음을 알 수 있었고, 질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는 어패류 등의 단백질 섭취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쌍릉 원경

익산은 질 좋은 화강암의 산지로 유명한데, 석실의 석재는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알려진 관재(棺材)는 늦어도 7세기 전반 이전에 벌목된 것을 가공한 것이다. 목관은 최고급 건축ㆍ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했으며, 이번에 발견된 유골함은 잣나무류의 판자로 만들었다.

600년에 즉위하여 641년 사망했다는 무왕의 재임 기록으로 보아 10대나 20대에 즉위한 경우 무왕의 사망 연령이 남성 노년층으로 추정되는 쌍릉의 인골 추정 연령과 비슷하며, 사망 시점이 7세기 초반부터 중반 즈음이라는 인골 분석 결과는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는 역사적 가능성을 한걸음 더 보여준다고 연구소측은 설명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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