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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종때라도 잘 했더라면…” 북벌의 의미 알 기회

  • 기사입력 2018-07-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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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여주 효종릉 휴무없이 개방

여름철 ‘세종대왕 역사문화관’도 함께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조선 왕조가 동아시아 강국으로 웅비하거나, 쇠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도 있었던 서너차례 기회 중에서 17대 효종 재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4대 세종이 이뤄놓은 군사훈련의 정례화(연천 훈련장 등), 병기의 선진화, 한글창제에 따른 의식수준의 선진화 등 기틀이 문종,단종,세조때 왕실살육전 속에 사라졌고, 15대 광해군 때엔 지혜로운 외교를 펼치는 가운데 암중모색하며 나라의 힘을 키우고자 했지만, 국익 마저 외면한 정쟁 속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세를 오판하다 삼전도 굴욕을 당한 인조는 조선의 국운을 쇠락하게 만든 핵심 장본인으로 꼽힌다. 정조와 헌종 조에도 국운 반등의 기회와 국왕의 의지가 있었지만, 노론과 세도정치의 득세 속에 무산됐다.

인조의 아들 둘, 소현세자와 효종은 나름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둘 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지낸 세월이 있었기에 귀국후 부국강병을 꾀했다.
   

소현세자는 광해군 못지 않은 외교술로 청나라를 안심시키고 나라를 강하게 만들 대책을 암중모색하지만, 귀국한지 얼마되지 않아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는다. 나중에 폐출되는 소용 조씨가 장남을 견제하는 임금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자신의 자식(숭선군)을 왕위에 오르게 하려는 일말의 기대감 속에, 당시 백성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던 소현세자의 독살 사건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다.

어쨋든 형의 죽음으로 왕위에 오른 효종은 갖가지 권력암투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빚어진 요동치는 민심을 돌리기위한 목적, 청나라에 대한 원한 설욕 등 목적에 따라 북벌정책을 시도한다.

1649년 등극한 효종은 뜻을 같이하는 신하들과 함께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해 군사를 양성하고 군비를 확충했다. 즉위 직후 유배형을 내린 김자점이 청나라에 북벌정책을 밀고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군비 확충, 군제 개편, 무관 우대, 군사훈련 강화, 하멜 일행과의 신무기 개발 등에 힘썼다.

효종의 이같은 계획은 그러나 1659년 급작스런 죽음을 맞으면서 소멸되고 만다. 북방정책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의 변심도 작용했다. 효종은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을 펼쳤고, 상평통보를 널리 사용토록 하는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효종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선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부활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효종의 북벌정책은 국면전환용, 민심무마용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망국적 노론의 득세가 최근까지도 이어지며 국운상승의 기회를 막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한다.

효종왕릉, 영릉(寧陵)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다. 문화재청은 여름휴가철을 맞아 효종의 영릉을 6주간(7.16~8.20) 휴관일 없이 특별개방키로 했다. 인근 세종대왕역사문화관도 함께 특별개방한다.

다만, 세종대왕릉 영릉(英陵)과 효종대왕릉 영릉(寧陵) 간 연결되는 ‘왕의 숲길’은 원래대로 월요일엔 개방하지 않고 다른 요일엔 연다. 세종대왕릉 자체는 정비공사로 인해 오는 12월 31일까지 관람이 제한되고 있는데, 봉분이 있는 능침구역만 효종대왕 영릉(寧陵)과 연결되는 ‘왕의 숲길’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abc@heraldcorp.com



▶여주의 영릉(寧陵)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동원상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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