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떠오른 신예 로버트 브린자의 범죄소설 데뷔작 ‘얼음에 갇힌 여자’(북로드)는 탁월한 디테일과 매력적인 캐릭터, 예상외의 반전으로 스릴러의 묘미를 선사한다.
사건은 폭설 발길이 끊긴 런던의 박물관의 얼어붙은 호수 아래서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희생자는 정치 거물의 딸 앤드리아로 결혼을 앞둔 상태다. 신문에 대서특필된 이 사건에 경시청 소속 에리카 포스터 경감이 소환된다. 함께 작전 수행중 남편이 즉사하는 걸 목도한 에리카는 트라우마를 지닌 에리카는 민감한 살인사건 해결에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건을 촘촘히 파헤쳐나가면서 에리카는 매춘부 세 명의 죽음과 앤드리아의 죽음에서 미묘한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손목이 묶이고 머라카락이 뽑힌 채 물 속에 버려졌다는 공통점이다. 에리카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살인자는 점점 더 그녀의 목을 조여오고, 진범을 찾은 순간, 에리카는 믿기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생생한 묘사와 치밀한 심리분석, 사회문제까지 투영, 사건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테라피’ ‘차잔’ ‘눈알수집가’ 등으로 사이코 스릴러의 대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내가 죽어야 하는 밤’(위즈덤하우스)은 ‘살인라이브게임’이라는 숨막히는 열두시간과 집단적인 광기를 그려낸다.
벤의 딸은 “아무래도 아빠가 위험에 빠진 것 같아”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옥상에서 투신한다. 2주 후, 절망에 빠진 벤 주변에서 섬뜩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공포에 질린 여자의 비명을 쫒아 달려간 곳에서 들은 ‘8N8’이란 단어, 황당한 살인게임을 예고하는 상트의 등장, 시내 한복판 대형 스크린에서 뜬 자신의 얼굴 등 불길한 예감 속에 시계의 바늘이 8시8분을 가리키는 순간, 그는 온 세상이 뒤쫒는 살인 게임의 사냥감이 된다.
빠른 속도감, 극도의 긴박감, 치밀한 심리묘사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 ‘피체크표’ 스릴러의 정수를 민끽할 수 있다.
▶B.A. 패리스의 ‘브레이크 다운’(아르테)은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심리적 폭압만으로도 충분히 극한의 공포로 몰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스라이팅 스릴러를 개척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 소설은 천둥번개가 요란한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밤, 숲속의 길 위에서 시작된다. 캐시는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숲속으로 난 지름길로 차를 몰다 멈춰 서 있는 차 안의 여자와 마주친다. 여자의 이상한 낌새와 함께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여자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차를 움직여 보지만 반응이 없다. 여러가지 복잡한 계산을 하면서 여자가 반응할 기회를 주지만 여전히 아무 신호가 없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캐시는 그 숲길에서 여자가 시체로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한다. 죄책감에 빠진 캐시에게 이후 침묵의 전화가 매일 걸려온다. 숨막히는 공포감과 죄책감은 캐시의 정신을 장악하고 점차 스스로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일궈내는 놀라운 반전이 묘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