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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리는 공공임대주택에서…인간의 축적된 기억을 읽다
베니스비엔날레 참가 서도호 작가
국내작가 유일 특별전서 본전시


[이탈리아(베니스)=이한빛 기자]시선은 가로와 세로로 움직인다. ‘줌 인’도 ‘줌 아웃’도 없다. 건조하기 그지없는 카메라 워크는 있는 그대로의 집을 묘사한다. 어느 신혼부부가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붙였음직한 따뜻한 문양의 타일, 아이가 커가며 남겨놓은 벽의 낙서 흔적, 손 때 묻은 책들과 오래된 책장 그리고 성실한 직장인의 바쁜 아침을 대변하듯 서서 먹는 간이식탁까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20여년 넘는 세월이 찬찬히 읽힌다. 13미터 대형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은 마치 관객이 그 집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2018베니스비엔날레 제16회 국제건축전에서 가장 이슈가 된 한국의 설치미술가 서도호(56)의 작품이다.

서도호는 본 전시장인 아르세날레에서 베니스비엔날레와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이 공동으로 준비한 특별전 ‘로빈 후드 가든:역전의 파멸’(Robin Hood Gardens: A Ruin in Reverse)에 영상물을 출품했다. 슬럼화로 재개발이 결정된 공공임대건축물인 ‘로빈 후드 가든’과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커미션이긴 하지만 작가 개인의 이름을 걸고 전시에 나선 사례가 올해는 거의 없어 전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본전시 참여자들의 경우엔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 ‘SANNA(세지마 가요+류 니시자와)’ 등 개인이 아닌 스투디오나 사무소로 이름을 올렸다. 
 
2018베니스비엔날레 제16회 건축전 유일 한국작가인 서도호 이한빛기자/vicky@

‘베니스의 남자’ 서도호를 산마르코 광장 근처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에서 만났다. 빅토리아 미로는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서도호의 개인전을 7월 7일까지 개최한다. 싱가포르 STPI에서 머물면서 자신이 매일 만졌던 전화기, 수도꼭지, 헤어드라이어 등을 탁본한 신작이 나왔다. “저는 공간에 축적된 사람들의 에너지, 역사, 추억, 기억을 어떻게 하면 그대로 보존해 다른 곳에 옮길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존 방식은 실, 천, 탁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영상이 되기도 합니다. 로빈 후드 가든 프로젝트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는 작가는 “비엔날레 출품작은 곧 철거될 집에 대한 기록물입니다. 주택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담겨있고, 그 흔적을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설명했다.

로빈 후드 가든은 영국 런던에 1970년대 완성된 공공임대주택단지로 올 초 재건축이 확정됐다. 현재 두 개 동 중 하나는 철거가 완료된 상태다. 로빈 후드 가든 철거는 당시 영국에서도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집값 급등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은 물론 건물 자체가 ‘부르털리즘’이라는 특정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표본이기도 해서다. 공장에서 찍어낸 유닛(가구)을 조합해 만든 이 건물은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있어, 철거 결정 후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3개 층을 레이저 컷팅으로 잘라내 소장하기로 했다. 

 
재개발이 확정된 영국 공공임대건물인 로빈후드가든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가족과 그들 삶의 흔적을 꼼꼼히 촬영한 영상물. 이한빛기자/vicky@

서도호는 아직 철거되지 않은 동의 4개 가구를 스틸사진으로 가구당 8시간 넘게 촬영해 타임랩스 영상으로 만들었다. 일반 캠코더로는 2시간이면 끝나지만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선 “짧게는 20년 길게는 25년 넘게 그곳에서 살았던 거주민에 대한 예의이자 존중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진과 3D스캔을 통해 완성된 영상물엔 로빈 후드 가든의 모든것이 담겼다. 형태와 구조는 물론이고 질감과 색채도 살아났다. 다만 이어지는 고민은 있다. “결국 우리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이냐인데, 영상은 냄새와 기온, 소리는 영상으로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서도호의 작품은 ‘과거’와 ‘흔적’을 이야기한다. 집에 쌓인 인간의 역사이자 삶의 기록을 중시하는 작가의 방향은 올해 총감독이 건축의 덕목이 무엇이냐며 제시한 ‘자유 공간’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건축은 사람이 거주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시는 올해 11월 25일까지 이어지고, 내년 6월부터는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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