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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기 가득한 ‘까막눈 엄마’들의 마음 담은 ‘꽃시’
김용택 시인, 엄마들의 시 100편 엮어

‘오늘은 문해학교 입학하는 날/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우리 아들 입학식 때 손잡고 갔던 학교를/엄마도 없이 나 혼자 갔어요//장하다 우리 딸! 학교를가다니/하늘나라 계신 엄마 오늘도 많이 울었을 낀데’(김춘남의 ‘장하다 우리 딸!’)

‘사십 년 전 내 아들/군대에서 보낸 편지/언젠가는 읽고 싶어/싸움하듯 글 배웠다//뜨는 해 저무는 하루/수없이 흐르고 흘러/뒤늦게배운 한글 공부/장롱 문을 열어본다//사십 년을 넣어둔/눈물바람 손에 들고/떨리는 가슴으로 이제야 펼쳐본다//콧물 눈물/비 오듯 쏟아내며/사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조남순의 ‘사십 년 전 편지’)


‘까막눈 엄마’들의 시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하루 해가 지는지 뜨는지 모르고 몸을 굴려온 엄마들은 수십 년이 지나 글 한을 풀면서 또 가족 생각이 먼저다. 학교에 보내지 못한 내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군에 간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지 못해 미안하고 죄지은 것 같은 40년의 세월을 엄마들은 소금기 가득한 진한 언어로 풀어냈다.

김용택 시인은 ‘전국 성인문해 시화전’에서 수상한 엄마들의 시를 보면서 그 생생함에 놀라고 목이 멨다. 꾸밈없고 거짓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김 시인이 이 시화전에 선보인 수상작 가운데 100편을 골라 생각을 보태 모음시집 ‘엄마의 꽃시’(마음서재)를 펴냈다. 엄마들의 가슴 뭉클하고 유쾌한 시 한 편 한 편에 시인의 생각과 느낌을 보탠 형식이다.

‘엄마 시인’ 중 최고령자는 88세, 대체로 60,70세다. 그 가운데 지적 장애를 가진 45세 엄마도 있고, 남편 하나 믿고 한국으로 시집 와 한글을 배운 이주여성도 있다. 이들이 글을 몰라 그동안 받은 설움은 시 한 줄로 어림도 없다. 그런 생각도 잠시,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벅찬 감동과 기쁨이 시들마다 넘친다.

‘꿈에 글자비가 내렸다 글자비는 마당에도 내렸고 옥수수밭에도 내렸다’‘알록달록 신기한 꽃들이 잔뜩 피었어요. 은행꽃, 동사무소꽃, 버스꽃…’‘저녁을 저년이라 쓰고 호호호 참새를 촉새라 쓰고 하하하 너도 틀렸냐? 나도 틀렸다 우리 모두 틀렸으니 친구 맞구나’

글눈이 트인 엄마들은 자신감이 백배다. 이젠 글자를 봐도 주눅 들지 않고, 손자의 동화책이 무섭지 않다. 은행도 척척 다녀오고 간판 글자 읽는 재미에 빠졌다. 너무 좋아 책을 안고 자고, 연필 쥐고 자고, 책에 뽀뽀하고, 옥수수밭에 나가서도 온통 글자 생각 뿐이다.

아버지들이라고 다 글자를 배운 건 아니다. 밥 한 덩이 훔쳐 먹다 하루종일 두들겨 맞던 고아원 시절, 공부시켜주고 호적에 올려준다더니 소처럼 일하고 매타작만 당했던 10년 세월, 그냥 그렇게 사는 걸로만 알았던 아버지는 글을 배우고 나서 비로소 행복을 알게 됐다.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도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글자를 배웠다. 시인은 아들이 책을 쓰는 사람인데 방 안 가득한 책을 읽을 수 없어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공감가는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이들의 시를 ‘꽃시’라 이름붙인 시인은 삶과 글이 일치한 벼락같은 시를 대하며 몇 번이나 목이 메고, 고개가 숙여졌다고 말한다. 글을 쓴답시고 얼마나 건방을 떨었는지 알게 됐다며,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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