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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안개에 봉우리는 섬이 되고…그곳엔 ‘그리운 임’ 이 산다
시인이 사랑한 섬진강 마을 ‘임실’
고목·예쁜집의 조화…영화 촬영지 ‘구담 마을’
‘문학마을길’ 서 김용택 시인과의 인문학 동행
새벽 옥정호옆 국사봉 오르면 아래는 ‘흰바다’
연분홍 꽃잔디·노란 유채꽃이 미소로 반기고…


한국치즈 60년 개척자 이미지가 강한 임실은 순우리말 어원 ‘그리운 임이 사는 마을’이라 해도 통하고, 지금의 표기 ‘任實’ 처럼 ‘소담스런 열매를 책임지는 곳’이라 해도 들어맞을 정도로, 건강하고 감성 넘치는 콘텐츠들이 많은 ‘마음 부자 고을’이다.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ㆍ섬 보다 더 아름다운 한국의 옥정호ㆍ붕어섬이 있고, 고려ㆍ조선 두 태조가 기도를 올려 왕조개창에 성공한 ‘기 충만’ 성수산이 지킨다.

산천경개 좋기로 소문난 임실은 1000여년전부터 터키의 파묵칼레 처럼 ‘웰다잉’으로 이름났지만, 지금은 ‘우유의 진신사리’로 불리는 치즈 관련 테마파크 때문에 ‘웰빙’의 명성도 얻었다. 그래서 ‘살아서도 임실, 죽어서도 임실’이라는 주민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진은 임실 옥정호의 물안개가 걷히며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붕어섬 모습.

블레드, 오르비에토 부럽지 않다= ‘주인을 구한 개’, 실화냐? 바로 임실의 실화이다. 오수면 원동산 공원에는 고려시대 최자의 보한집에 기록된 그 충견의 기념비가 있다. 파란 눈의 임실 사람 지정환(벨기에 명: 디디에 세르스테반스) 신부와 이 곳 농민들이 함께 일군 치즈마을, 치즈테마파크는 청소년과 대학생, 젊은가족들의 단골 여행코스가 됐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S자로 굽이치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산기슭에 멋진 고목과 예쁜 집들이 조화를 이룬, 영화촬영지 ‘구담 마을’, 섬진강 발원지와 가까운 오원천과 송림이 조화를 이룬 선녀 놀이터 ‘사선대’ 역시, 내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런 연인이 살 것 같은 곳이다.

임실은 또 살아있는 인문학이다. 임실에서 70 평생을 살며 미학과 철학을 터득한 김용택 시인이 여행자를 맞아 ‘자연ㆍ건강과 함께 하는 미학적 삶’에 동행한다. 시골 아재 한 분 만났다가, 그와 두어시간 지내고 나니 여행자의 마음이 한껏 풍요로워진다.

아래 용택 아재의 말은 시(詩)가 아니다. 하지만 자연 미학을 구술하는 그의 일상 언어 전부가 시로서 손색이 없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보는 소소한 안목만 있으면 70억명이 시인이다.

임실 치즈마을에 그려진 치즈선구자 지정환 신부 모습
삶의 미학, “심심하면, 심심할 새 없다”= “심심하면, 심심할 새가 없어요. 아침 산책때 마다 만나는 물상은 같은 것이라도 같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물 조차 오늘 흐르는 물은 어제의 그것이 아니듯. 아침에 새가 지저귀니 맹꽁이가 웁니다. 꽃이 없다가 피어버리지요. 이 얼마나 재미 있습니까. 사계절 달라지는 산은 내 정원. 볼 때 마다 다른 자연은 무궁무진한 것이지요. 나무 만큼 시 잘 쓰는 시인이 있을까. 자연이 하는 말 만 받아쓰면 그게 시(詩)인걸.”

“이곳엔 초록색 지붕 ‘그 여자의 집’도 있다. 소쿠리에 담은 배추를 나풀나풀 거리며 석양을 등지고 그녀가 오다, 날 보더니 뻣니 보이며 힐긋 웃었지. 네 살 아래 그 여자와 별 일 없었지만, 병원서 우연히 만난 그녀의 딸이 내게 ‘우리 엄마로 시집을 내셨던데’라고 아는 척 했을 땐 가만히 있었다. 섬진강변 죽마고우 하채네 집도 매일 만난다. 하채네 염소는 자주 가출을 한다. 반년, 1년 지나 돌아올 땐 식솔 대여섯 거느리고 온다. 대박! 그런 하채에게 ‘좀 있다 올테니, 섬진강 매운탕 한 냄비 해놔’하면, ‘알았당께’ 화답해주던 그 추억 새록 떠오른다.”

“ ‘임실에선 뭘 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는다. 부질없다. 자기가 알아서 봐야지. 아름다움은 자기가 찾는 것이다. 느릿하게 소일하는 건 심심한데, 느리게 관찰하면 모든 것이 신비롭고 아름다워 심심할 새가 없다.”

섬진강 500리 중 진뫼마을~구담마을 8㎞ ‘문학마을길’에서 새소리 물소리의 코러스 속에 벌인 김용택과의 동행은 이런 시(詩) 같은 초록빛 대화로 꾸며졌다. 두 시간의 강변정담을 ‘심심하면, 심심할 새가 없다’는 시 제목으로 써도 되겠다. 

김용택 시인 일가족의 젊은날 섬진강 소풍
옥정호의 조석, 찍으면 인생샷= 때마침 섬진강변 신록은 오리발나무, 층층나무, 복분자, 자귀, 오동, 느티, 산초, 찔레나무 등이 저만의 색깔로 피어나고 있었다. 김 시인은 “이맘때 알록달록 다르다가, 6월이 되면 모든 신록은 초록동색이라오. 재밌지 않아?”라고 한다.

1970년 22세때 처음 교과서 이외의 책을 보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모교인 덕천초교 교사로 일하면서 일과후 문학과 미술, 정치, 환경, 고우영의 만화 ’원 피스‘까지 엄청난 독서와 습작을 한다. 1982년 시 ‘섬진강’으로 등단했다. 시 속을 거니는 그와의 동행은 ‘쉼표있는 삶’을 추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명사 인문학 여행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은어, 메기, 자라, 쏘가리 등이 서식하는 섬진강 위로는 사람이 오든 말든, 암수 서로 정다운 왜가리가 노닐고, 알고 보면 터프한 원앙은 강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듣고 나서, 이튿날 북쪽으로 20㎞ 가량 떨어진 운암면, 옥정호로 간다. 구름 운(雲)자 들어가는 마을이 6개나 있을 정도로 옥정호는 물안개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만들어낸다.

새벽에 옥정호 옆 국사봉 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 봉우리는 섬이 되고 호수 일대는 흰 바다가 된다. 동틀 무렵 마이산도 이 옥정호 동양화에 합세한다. 가장 장엄하고 감동스런 풍광이다.

해뜬 직후에 오르면 블레드섬보다 훨씬 크고 기묘하게 생긴 붕어섬 윤곽이 드러나고 태양빛에 저항하는 물안개 무리 몇몇이 여러 봉우리 중턱에 농성하고 있어 ‘반반 종합 선물세트’를 감상한다.

선명한 옥정호 풍광을 원한다면 맑은날 대낮 언제든 좋다. 감성적인 여행자는 석양도 탐닉한다. 옥정호에 대처하는 우리의 네가지 자세는 4종세트 인생샷을 선사한다.

옥정호는 쌀 수탈용 김제평야 물대기를 위해 일제가 섬진강 남서쪽 물꼬를 막아 동쪽으로 틀기 위해 댐을 만들면서 생겼지만, 이제 우린 대범하게 풍광만 즐길 때도 된 것 같다.

붕어섬이 새 단장을 시작했다. 내년쯤이면 블레드섬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갖출 것이고 일반인들도 황포돛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세계적인 호수, 호변관광지를 꿈꾸는 옥정호 주변과 섬엔 4월말 연분홍 꽃잔디와 노란 유채꽃이 활짝피어 미소짓고 있었다. 곧 5월 중하순이 되면 수십만송이 장미꽃들이 ‘장밋빛 미래’을 노래할 것이다.

임실 구담마을(영화촬영지) 느티나무 언덕. S라인 섬진강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
대망,의리 그리고 나뭇꾼 없는 선녀 놀터= 동쪽 성수산은 대구 팔공산과 연결돼 있다. 왕건이 도선의 권유에 따라 이곳에서 백일+3일 기도를 해서 대세장악에 성공하고, 이 일화를 ‘일행선사기’라는 불가의 서적에서 확인한 이성계 역시 기도를 올려 대권을 잡았다. 호남의 성수산, 영남의 팔공산은 두 지역을 대표하는 기도처로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성수산 계곡의 풍광도 일품이다.

산천경개 좋은 임실은 1000여년전부터 터키의 파묵칼레 처럼 ‘웰다잉’으로 이름났지만, 지금은 ‘우유의 진신사리’로 불리는 치즈 관련 테마파크때문에 ‘웰빙’의 명성까지 함께 얻었다. ‘살아서도 임실, 죽어서도 임실’이라는 주민들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 있어 보인다.

성수산과 그리 멀지 않은 치즈테마파크에 가면 숱한 체험과 개척과정을 음미하면서 치즈까지 배불리 먹을수 있다. 머지 않아 고풍스런 소풍터로 변모할, ‘응답하라 1958’ 치즈마을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골목 곳곳을 벽화로 장식해 친근감을 더한다.

황금개띠해 기념 주인 구한 의견비(義犬碑) 참배, 섬진강 다슬기로 끓인 수제비 맛보기, 구담마을의 동양화 작품처럼 생긴 느티나무 언덕에서 S라인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일, 나뭇꾼 없이도 잘들 놀았던 선녀들 놀터 사선대, 유네스코 무형유산 필봉농악 구경 역시 임실여행 필수 아이템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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