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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죽음에도 자유와 자주를!
한 친구가 해외 여행지에서 함께 떠났던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시신을 운반할 허가증을 얻으려니 적어도 1주일이 필요했다. 현지 장례식장을 임시로 찾을 수밖에 없었고, 한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꽃들로 채워진 관은 열려 있었고, 아버지는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잠들어 계셨다. 하얗게 화장을 한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아름다워서, 혼이 나가 있던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차분해졌다. 가족은 하얀 관 안의 아버지와 남편에게 평안하고도 차분한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다시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관망 유리 뒤쪽에서 염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에게 삼베옷을 입히고 꽁꽁 온몸을 묶어놓았는데, 자신의 몸이 마비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우아한 모습으로 관에 담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묶고, 또 묶고, 관으로 덮고, 못으로 또 박고 또 박아 버리는 것이었다. 장의사는 관망 유리 뒤에 가족이 서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해야 가족들에게 상처가 덜 되는지 전혀 안중에 없었다. 외국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만 해도 조금 다른 상태로 존재하긴 했지만 분명 사랑하는 자신들의 아버지였는데, 한국에서는 그곳에 누워있는 자가 더는 아버지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가 누구건 간에 끔찍한 작별의 절차를 보았을 뿐이었다. 

친구의 고통스러운 토로를 듣고 우리나라 염의 전통을 조사해봤다. 그런데 고려 말 송나라에서 들어온 염 풍습은 “옷과 이불로 썩은 형제를 감추어 혐오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고, 고인을 꽁꽁 묶는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최연우 단국대 전통의상학과 교수에 따르면 “수의는 고인의 생전에 가장 좋은 옷”을 입혔고, 그래서 “여성은 혼례복을 남성은 관복을 주로 입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갖은 수탈을 해가는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1934년 ‘의례준칙’을 발표했다. 부모님을 여읜 죄인이라는 의미로 상주가 입었던 거친 삼베를 아예 고인에게 입힘으로써 아예 고인까지 죄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삼베옷은 죄인(罪人)이나 수인(囚人)이 입거나,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입히던 수의(壽衣)였다. 현대 장례에서 죽은 자가 죄인의 옷을 입고 꽁꽁 포박당하는 곳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한다.

4월이 잔인한 것은 새로운 생명이 되살아나는 봄에도 인간은 노화와 죽음을 향해 계속 달려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결코, 미리 상상해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지만, 수인(囚人)이 입었던 삼베옷을, 그것도 최근 상술과 함께 중국에서 들여온 짝퉁 삼베옷을 입고, 죄인처럼 꽁꽁 묶인 채 땅속에 혹은 불길 속에 누워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 세상을 떠나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처참하다. 아직도 죽음까지 지배하고 있는 일제의 잔재가 치욕스럽고, 그것을 여전히 당연한 전통으로 여기는 우리의 무심함도 이 봄에 견디기가 힘들다. 아, 시인 T.S. 엘리엇이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는 땅 아래에서 인간의 하얀 해골이 뒹구는 잔인한 계절을 노래했던가. 일본만 탓할 시기는 지났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의 몫이다. 죽음에도 인격과 품격이 있을 것이다. 죽음에도 자유와 자주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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