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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겨지고 부러진 나무…곤란한 삶의 모습같지 않나”
금호미술관, 조각가 정현 개인전
폐한옥 목재 활용 신작등 30여점 공개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쓸모를 잃고 부러진 들보가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한바탕 불속을 뒹굴어 검게 변하고 난 뒤다. “찢겨지고 부러진 모습이 좋다. 곤란한 삶의 모습 같아서”라는 작가는 그을린 나무에 검은 먹을 입혔다. 그리고 예리한 면들이 삐죽 삐죽 솟아나도록 한 자리에 쌓았다. 쓸모는 다 했으나 하늘로 솟구치는 에너지는 그대로다. 멀리서 보니 한폭의 산수화 같다.뾰족하게 갈라진 나무 면이 마치 날카로운 필획처럼 읽힌다. 

조각가 정현의 개인전이 금호미술관에서 5월 22일까지 열린다. 2016년 프랑스파리에서 대규모 전시 이후 첫 국내전이다. [사진=이한빛 기자/vicky@]

조각가 정현의 개인전이 열린다. 금호미술관은 10일부터 5월 22일까지 조각가 정현의 개인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관을 활용하는 전시는 평면 22점, 입체 9점 등 30여점의 작품이 모였다. 2016년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전시이후 작가가 국내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1층 전시전경, 흰개미가 먹어 쓰임새를 다한 대들보 위로 다른 목재조각이 솟아올랐다. [사진=이한빛 기자/vicky@]
정현 개인전 2층 전시전경. 폐한옥에서 수집한 나무들로 구조물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한폭의 산수화같다. 뾰족하게 갈라진 면이 마치 날카로운 필획처럼 읽힌다. [사진=이한빛 기자/vicky@]

전시장 1층부터 3층까지는 신작으로 채웠다. 흰개미가 먹어 들어가 더이상 지붕을 받치지 못해 ‘폐량’으로 분류된 대들보는 정현 작가의 손에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세로로 우뚝 서서 수백년의 세월을 지탱했을 들보는 전시장에 가로로 놓였고, 그 들보 위로 틈을 비집고 나온 것 처럼 다른 목재조각이 놓였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힘의 기운이 느껴진다. 

정현 개인전 3층 전시전경, 콜타르로 그려낸 3미터에 달하는 대형드로잉. [사진=이한빛 기자/vicky@]

대형 드로잉 3점도 나왔다. 석유 찌꺼기인 콜타르로 그린 그림이다. 콜타르는 1990년대부터 사용했던 재료다. 산업폐기물과 현대사회에서 용도를 다한 물건들로 인간을 이야기해온 작가에겐 트레이드마크로도 통한다. 3미터 길이의 드로잉엔 고목나무가 보인다. “너무나 저렴해 사용했던 콜타르와 인연이 이렇게까지 이어졌다”는 작가는 “고목에서도 새싹이 돋을 수 있듯, 그런 기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왕궁 정원에서 전시됐던 '침목' 작품. 작가는 "견딤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했다. [사진=이한빛 기자/vicky@]
침목 작품 세부 [사진=이한빛 기자/vicky@]

지하 1층엔 구작 중 대표작품과 미공개 드로잉이 자리잡았다. 2016년 프랑스 파리 왕궁정원에서 선보였던 ‘침목’도 나왔다. 프랑스에서도 전시 당시 르몽드에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왕궁정원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도 받았다.

철길 아래 깔리는 침목은 기차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가장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다. 길이가 2미터가 넘는 침목은 그 아래 깔리는 쇠석에 부딛혀 수 없는 생채기가 났다. 작가는 침목으로 가장 간단한 형태의 서있는 사람 형상을 만들었다. 자신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침목의 생채기를 극대화해서 보여준 것. “견딤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시련이 잘 들러붙은 침목을 보면서 에너지와 숭고함을 느낀다”

금호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건 2001년이후 17년만이다. 미술관측은 “수십 년 세월을 견뎌내고 용도를 다한 재료의 물성이 드러내는 인간의 초월적 역사와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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