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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월세의 추억…다시 대세가 된 전세
또 청첩장이다. 4~5월은 결혼식이 참 많다. 보통은 배우자 신상정보를 묻는다. 그리고 요즘은 “집은?”을 덧붙인다. 동네가 어딘지, 자가인지 전세인지에 따라 부부는 물론 양가의 경제적 수준을 종합평가(?)할 수 있는 효율적인 척도다. 강남의 자가 아파트라면 ‘결혼 잘했다’는 칭송을 단번에 획득할 수 있다. 월세 산다는 답이 나오면 표정관리(?)를 하고 그간의 정보를 총동원해 적절히 답해야 한다. ‘이사 날짜가 안 맞았다’거나, ‘입주 날짜까지만 잠깐 산다’는 상황이라면 답은 훨씬 쉽다.

우리나라에서 월세는 피치 못한 사정이 있어 잠시 선택한 주거형태이거나, 전세 살 형편 조차 안되는 처지로 여겨져왔다. 전세라는 독특한 주거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시에 내집마련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까닭에 전세는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의 대체재가 아니라 우위 상품으로 분류된다. 월세가 아닌 전세수요를 주택 실수요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때 월세가 잠시 대세를 넘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가 고착화되자 전세보증금으로 뭉칫돈을 받아도 마땅히 굴릴데가 없어진 집주인은 월세를 선호했다. 집값마저 횡보하면서 전세금을 활용한 레버리지 효과도 크지 않았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부양에 적극 나서면서 전세수요자는 서둘러 빚을 내 집을 사기 바빴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70% 수준이라며 “신용보강이 이뤄지면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매매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전세 수요와 공급이 모두 줄었다. 2016년 상반기 서울의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비중은 60% 초반까지 뚝 떨어졌다.

하지만 월세의 증가는 어디까지나 전세 수요공급 감소에 따른 반사효과일 뿐 월세 자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거나 선호됐기 때문은 아니다. 사회 초년생이 부지런히 종잣돈을 모아 전세를 살고, 이를 바탕으로 알뜰히 모으면 아파트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우리 사회의 ‘주거사다리’는 여전하다.
“전세는 옛날 추억이 될 것”이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를 무시한 섣부른 주거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빚내서 집 사라’(주거)는 정책은 ‘집을 사들여라’(투기)라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져 집값 폭등을 불러왔다. 사라질 것이란 전세는 그 틈을 비집고 ‘갭투자’라는 새로운 투기수단으로 활용됐다. 무주택자의 주거비용을 낮춰주는 전세의 긍정적 역할은 약화된 채 가계부채 급증, 전세가격 상승 등 시장 불안만 심화됐다.

결국 2년을 내다보지 못한 정책으로 애꿎은 무주택 서민만 전세라는 주거 안전판을 잃고 월세와 주택구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높은 전세가율을 믿고 투기판에 뛰어든 일부 다주택자들은 늘어난 입주물량과 부동산 가격 조정 흐름 앞에 역전세를 걱정해야할 노릇이다. 임대차 시장을 주거복지가 아닌 어설픈 시장 논리로 접근한 결과다.

적절히 제어되고 통제되지 않는 시장은 혼돈일 뿐이다. 집값이 횡보하고 전세보증금을 활용할 투자기회도 마땅치 않으면 전세는 다시 약화되고 월세 비중이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선택, 시장의 결과다. 하지만 이를 정책의 근거로 삼거나 목표달성을 위해 활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주거정책은 삶의 질, 안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주거 사다리로서 전세가 가진 긍정적 역할은 포기할 수 없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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