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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너거 아버지 어데 사시노?”
과거 버릇없거나 모르는 아이에게 흔히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묻곤 했다.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서 김광규씨의 대사로 유명세를 탄 “너거 아부지 뭐 하시노?”는 요즘도 여러 장르에서 심심찮게 회자된다. 집안의 내력과 가문을 우선시한 옛적 질문이었다. 그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어디, 정확히는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가 모든 평가기준의 으뜸이 됐다.

네이버부동산에 들어가면 동료나 친구의 아파트가 몇세대인지, 시세는 어떤지 상세히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집에 초대받기전 검색해보고는 자기네들끼리 금수저니 흑수저니 하며 낄낄댄다. 아파트 아주머니들은 고만고만한 ‘시세’들끼리 뭉쳐다니기도 한다. 과도한 정보제공이 낳은 부작용이자 우리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때는 어김없이 부동산이 검증 1순위다. 공직자 재산공개때도 가장 부각되는 것이 어디에, 얼마나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느냐다. 언제부턴가 부동산의 있고 없음을, 혹은 많고 적음을 그 사람의 주요 평가잣대로 삼기 시작했다.

‘행복’이 최우선 모토인 문재인 정부에서도 집값은 계속 올랐다. 최근에는 강남권 견본주택에 10만 인파가 몰리는 ‘로또 아파트’ 현상마저 눈앞에 펼쳐진다. 한때 열풍이 분 ‘꼬마빌딩’은 여전히 젊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약간의 목돈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얼마전 찾은 지방의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방 한칸짜리 4000만원이 조금 안되는 오래된 아파트를 찾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럴까 궁금해졌다. 이 아파트로 월세를 놓으면 한달에 25만원 ‘따박따박’ 들어온다고 중개업자는 귀뜸했다. 기성세대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월세 받는 재미야 솔솔하겠지만 목돈을 지방의 아파트에 묶어 놓는데 따른 리스크는 분명 있는데도 말이다.

서울에서 20년차 직장인 김모씨(45)는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계산해도 서울에서 자기 집 장만이 여의치 않을거란 계산에서다. 맞벌이지만 버는 재산이 부동산 상승폭을 따라가지 못한다.

몇년전 집값이 곧 떨어질 거라, 정권이 바뀌면 떨어질 거라는 주변의 권유가 뼈아프다.

아파트 소유 욕망은 젊은 사람들의 삶도 바꿔 놓는다.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미침은 물론 생애주기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젊은 세대가 의외로 많이 투자해 충격을 준 바 있는 가상화폐 열풍은 이같은 현상의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식이 아니면 목돈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핀란드가 1등으로 꼽힌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57위로 1년새 2계단 떨어졌다. 핀란드가 ‘잘 벌어 잘 쓰는 웰빙국’으로 평가됐다면, 한국은 ‘버는 족족 부동산에 쑤셔넣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행복하기 정말 쉽지 않은 이유다.

이제 “너거 아부지 뭐 하시노”의 시대는 지났다. 바야흐로 “너거 아부지 어데 사시노”, 아니 “어느 아파트에 사시노”의 시대다. 나의 행복이라기 보다는 남이 내가 행복한지를 보는 척도가 됐다.

어느 아파트, 몇평 짜리에 사는지가 모든 것의 평가기준이 된 세상, 씁쓸하기 짝이 없다.

kimh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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