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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윤성빈의 ‘철벅지’, 그리고 삼성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다. 스켈레톤의 윤성빈,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상화 허벅지를 볼 때마다 필자는 외람되게도 이 시를 패러디하고픈 충동이 인다. 윤성빈의 허벅지 둘레는 24.8인치(63㎝)로 전 세계 스켈레톤 선수 가운데 가장 굵은 편이다. 이상화는 23인치(58,42cm)로 웬만한 남자 선수보다 굵고, 마른 여성의 허리 둘레와 비슷할 정도다. 이런 ‘꿀벅지’, 아니 ‘철벅지’를 갖기 위해 태풍 천둥 벼락같은 모진 고난을 견뎌야 했고 무서리 땡볕의 역경에 무릎 꿇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를 숱하게 반복했을 것이다. 시어에 쓰인 대추를 철벅지로 바꾸고 ‘저게 저절로 굵어질 리는 없다’로 개사해 두 사람에게 헌정하고픈 마음인 것이다.

썰매종목에선 스타트가 전체 성적을 좌우한다. 스타트를 0.1초 줄이면 최종 기록은 0.3~0.4초 정도 줄어든다고 한다. 탄탄한 철벅지가 폭발적 스타트를 만든다. 윤성빈은 하루 8끼 식사로 스켈레톤 입문때보다 몸무게를 13㎏ 늘려 87㎏로 만들었다. 트랙을 타고 내려오면서 가속도가 붙는 썰매 종목은 무거울수록 최고 속도가 더 빨라진다. 스켈레톤에 최적화된 몸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는세계적 강자들을 하나 둘 제치며 입문 5년만에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윤성빈의 사례를 산업계에 적용하면 속도가 기업의 성패를 가른다는 냉엄한 현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졸면 죽는다’는 IT 및 전자업계에서 삼성은 1년 가까이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리더십 공백을 겪었다. 구속 이전인 2014~2016년만 하더라도 글로벌 전장 업체 하만을 인수하는 등 4차 산업과 관련된 투자와 M&A를 활발히 벌여온 것과 대조적이다. 그 사이 경쟁사들은 AI, 자율주행차, 드론, 증강현실(AR) 등 미래 먹거리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만들어갔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드론 오륜기’였다. 1218대의 드론이 밤 하늘을 누비다가 오륜기 모양으로 대열을 맞추는 명장면에 세계인의 찬사가 쏟아졌다. 이 화려한 공중 쇼를 연출한 기업은 놀랍게도 PC용 반도체 회사 인텔이다. 인텔은 2015년 중국 드론 제조사 유닉에 6000만 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2016년에는 자동 파일럿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독일 어센딩테크놀로지를 인수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삼성의 M&A는 윤성빈의 8끼 식사와 같은 것이다. 윤성빈의 8끼는 군살을 찌워 체중을 불리자는 게 아니었다 . 영양을 고루 갖춘 균형잡힌 식단이 군살이 아닌 근육질의 몸을 만들어줬고 이는 압도적 스피드의 원천이 됐다.

삼성은 다음 달 창립 80주년을 맞는다. 이건희 회장은 1988년 창립 50주년 당시,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신경영 구상으로 글로벌 초일류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부회장이 겪은 1년간의 수감은 태풍 천둥 벼락에 발가벗은 채로 노출되는 시련이었을 듯하다 . 이제 비상한 각오로 혁신의 스피드를 높여 글로벌시장 선도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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