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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서태식 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 “‘삼일’은 감사·세무·컨설팅 세분야 모두 빼어나자는 뜻”
외환위기때 ‘119광고’로 위기극복 동참
국내 회계업계에 美 선진기법·IFRS 도입 회계기준 국제화 기여
서태식 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

“스키를 타기 위해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서태식 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음 속에 ‘설원(雪原)’을 그린다. 한 시간 가량 손목을 비틀고 발목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출발선에서 이제 막 슬로프를 내려가며 들이마실 청량한 공기 한 움큼을 떠올린다.

“1980년부터 스키를 했습니다. 타고 내려갈 때 느낌이 너무 좋아서 외국 출장 때마다 스키장을 찾아가지요. 평소 1시간씩 운동을 하면서 스키 타는 순간을 준비합니다.”

불과 3주 전엔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대구 시내를 달렸다. 팔순을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너무 쉽더라”며 웃어넘겼지만, 이 짧은 한순간을 위해 그는 나이 들며 기울어진 상체부터 곧추세우고 6개월간 주말마다 7.5~10km 속도로 러닝머신을 열심히 달렸다.

평소 작은 일에도 꼼꼼히 공을 들여 준비하는 서 명예회장은 국내 회계 산업의 미래를 먼저 내다보고 대비한 업계의 ‘산증인’이다. 모든 게 척박했던 1960~1970년대, 회계사의 일로 ‘감사 업무’만이 주로 거론되던 당시 ‘세무’뿐 아니라 ‘경영자문(컨설팅)’도 모두 회계사가 개척해야 할 미래라는 생각에 세 가지 분야에서 모두 빼어나야 한다는 뜻을 담아 ‘삼일(三逸)회계법인’을 설립했다. 서 명예회장의 선제적인 도전 덕에 10여명이던 삼일회계법인은 약 40년만에 3000여명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1위 회계법인으로 성장했다. 법인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역임하며 국제회계기준(IFRS)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회계 기준 국제화에도 앞장섰다. 지난해 11월엔 그간 이룬 공훈을 기리는 뜻이 모여 회계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회계인 명예의전당 헌액인’에 선정됐다.

서태식 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은 국내 회계 산업의 미래를 먼저 내다보고 대비한 업계의 산증인이다. 1960~1970년대, 회계사의 일로 감사 업무만이 주로 거론되던 당시 세무뿐아니라 경영자문도 모두 회계사가 개척해야 할 미래라는 생각에 세 가지 분야에서 모두 빼어나야 한다는 뜻을 담아 삼일회계법인을 설립했다. 외국 출장때마다 스키장을 찾을 정도로 스키를 즐기던 그는 3주 전엔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대구 시내를 달렸다. 정희조 기자/checho@

수학을 잘 하던 소년…‘생존’ 위해 경제학 전공하다=1938년 태어난 서 명예회장은 해방과 6ㆍ25라는 현대사의 가장 굴곡진 시기를 몸소 겪으며 자라났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생존’은 험난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묵직한 과제였다.

“6ㆍ25를 겪으며 피난 온 사람들을 보고 ‘아, 모든 게 생존이구나’하고 생각했죠. 저는 대구에 살았기에 피난을 가진 않았지만, 그 당시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였습니다. 제가 형제가 넷인데,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폭탄이 떨어지면 사방(四方)으로 흩어지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네 방향으로 흩어지면 한 명은 살아남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죠.”

그의 부친(父親)은 어린 그에게 평소에도 ‘비상사태’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해방 당시로 기억합니다. 해방 시기니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참 극심하고 돈의 가치가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버지께서는 벼 20~30가마를 미리 사서 보관하셨다가 도정해서 가족과 일꾼들에게 나눠주시곤 하셨습니다. 1년치 쌀을 미리 사두신 것인데 물가로 인한 비상을 그렇게 대비하신 것이죠.”

시대의 변화에 살아남길 바라는 부친의 뜻은 서 명예회장을 경제학 전공으로 이끌었다.

“형제가 모두 수학을 잘했습니다. 제일 큰형이 수학과를 갔죠. 큰형이 둘째인 제게는 너도 수학을 잘 하니 경제학과를 가는 게 괜찮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버지께는 첫째가 수학을 하고, 둘째인 제가 경제학과를 전공해 사업을 하고 셋째는 의과대학을 가라고 하셨죠. 그리고 넷째는 물리학을 전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네 형제가 각기 다른 전공을 갖게 되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한 명은 살아남지 않겠냐고 생각하신 것이죠.”

유년시절 가득했던 수학에 대한 애정은 미래에 그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회계사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수학 덕분에 당시 계리사(회계사) 시험에서도 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통학할 때, 수학을 머릿속으로 푸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8km 거리를 통학했는데 기차를 타거나 걸어가는 때에 책을 꺼내보기도 쉽지 않았죠. 그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머릿속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죠. 사촌형이 수학과외를 해줬는데 과외라고 하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풀잇법을 알려주지 않고 ‘좀 더 생각해보라’고만 하더군요. 그렇게 며칠을 끙끙 생각만 하다 마침내 풀고나면 그때서야 풀잇법을 몇 가지 더 알려주더군요. 사실 제가 계리사 시험을 합격한 것도 수학 덕분이었습니다. 회계학 등 다른 과목은 보통수준으로 봤는데, 화폐 통화량과 경제성장ㆍ고용 등 관계를 논하라는 경제학에선 답안을 글로 적지 않고 수식으로 설명했죠. 그 점수가 매우 높았습니다.(웃음)”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선진 회계 기법을 배우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다=서 명예회장이 계리사 시험을 치른 데는 당시 ‘아시아태평양 회계사 연맹(CAPA)’에 정부 대표로 다녀온 모교 회계학 교수의 한 마디가 주효했다.

“교수님이 계리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참 중요한 직업이 될 거라 하셨습니다. 당시 필리핀이 선진국이었는데, 그곳은 계리사들이 권총을 차고 다닐 만큼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부풀려서 얘기하신 것이죠.(웃음) 그 이야기를 듣고 회계학을 좀 살펴봤는데 ‘아, 이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복잡한 거래를 분류하고 집계하는 이 지식이 제가 사업할 때 도움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계리사 자격증을 얻은 뒤 처음에는 무역회사에 잠시 발을 담갔다. 회계 지식을 바탕으로 무역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관 공무원들에게 돈봉투를 건네야 일이 진척되는 사업 환경은 젊은 그에게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정부가 규정으로 계리사 보수를 정한 시절이라 안정적으로 일반 회사원보다 2~3배는 더 벌 수 있더군요. 상장회사 감사를 했는데 당시에는 재무부 장관이 어느 회사를 감사하라고 지정해주는 방식으로 사회적 대우도 좋아 ‘영감님’ 소리도 들으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1964년 기아합동계리사사무소를 설립한다. 이를 1971년 법인형태로 바꾸면서 ‘삼일회계법인’으로 개명했다. 그 즈음 서 회장은 회계법인 발전과 관련된 중요한 변곡점에 들어서게 된다. 1970년에 미국의 ‘라이브랜드로쓰브로스앤드몽고매리(Lybrand, Ross Bros & MontgomeryㆍPwC의 전신)’에 회사를 매각하고 미국의 선진 회계 기법을 경험하기로 한 것.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를 매각하는 대신 제가 운영하는 회계법인 사람들을 전부 미국에 보내고 미국식으로 훈련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원이 2년 동안은 미국에 가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서 명예회장은 회사를 자산가격 그대로 내다팔게 된다. 매출 규모에 맞게 인수가격을 책정해주는 미국식 거래 관행을 모르고 임대보증금ㆍ비품ㆍ전화기 등을 있는 그대로 계산해 감가상각까지 한 뒤 내다 팔았다. 그 정도로 선진 회계 법인과의 만남이 생소했던 시기다. 그러나 4년 만에 삼일회계법인은 서 명예회장 품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미국 법인이 맡은 뒤 적자가 지속됐는데, 적자 해결책을 묻는 책임자의 말에 서 명예회장이 자신에게 되팔면 흑자가 날 것이라며 배짱 두둑한 답변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시 관리하러 온 미국 사람은 영어 기술만 보고 뽑지만, 제가 뽑으면 정말 일을 잘하는 전문가를 뽑을 것이라고 말을 했죠. 여기에 운영자금 30만달러가 필요한데 지급보증까지 서달라고 요청하며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파견되는 ‘기술자문인(테크니컬 어드바이저)’을 자기가 직접 면접해 뽑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과감한 제안도 서슴지 않았다.

“1974년 인수 이후 미국에서 오는 자문인들을 제가 직접 인터뷰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아프리카 수준의 나라로 평가돼 제게 ‘왜 이렇게 까다롭게 하냐’는 말도 나왔죠. 하지만 우수한 인원을 끌어들여 훌륭한 회계법인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선진국인 일본 도쿄에 가는 미국 본사 인원들만 파트너로 승진하길래, 앞으로는 한국에 오는 사람도 파트너 승진 예정자로 해달라는 조건도 걸었죠.”


‘회계의 국제화’를 내걸고 시대를 돌파하다=서 명예회장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조달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회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결합재무제표’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1970년말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의 주감사인으로 외국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회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가 국제 무대에 나가면 규모가 작아 시장에서 어필하기 어려웠죠. 그 때 기업들이 출자관계를 통해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실체라는 점에 착안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결합재무제표’를 선보인 것입니다. 연결되는 기업의 자산을 합치고 내부거래는 제거한 회계 방식입니다. 당시 쿠퍼스앤드라이브랜드(Coopers&LybrandㆍPwC의 전신)에서도 과연 이 방식을 사용해도 되는지 논쟁하다가 결국은 인정을 했습니다.”

한국 회계 기준의 국제화를 내걸고 선진회계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20년 넘게 도전을 지속한 그의 노력이 가장 빛을 본 때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그는 외환위기라는 비상사태가 터지자 ‘119 광고’를 신문에 내건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세계은행이 한국 회계사 못 믿겠다고 난리더군요. 태국은 당시 ‘아서앤더슨’이라는 미국 회계법인을 데려와 구조조정을 했었고, 한국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있었죠. 그래서 그 때 신문에 광고를 했습니다. 삼일회계법인에 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딴 119명이 있다고 밝히고, 이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도울 것이라고 한 것이죠. 미국에 건너가 그곳 자격증을 딴 삼일회계법인 한국인 회계사가 딱 119명이었던 겁니다. 다른 회계법인에는 그 자격증을 가진 이도 별로 없을 때였죠. 구조조정을 위해 나온 미국 사람들은 미국식 회계기준을 이야기하지만, 한국 사람은 국내 회계기준을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중간에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을 삼일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이 도왔습니다. 나중에는 재무부와 한국은행이 세계은행이 신뢰하는 삼일회계법인에 일을 맡기라고 할 정도였죠.”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외환위기를 거친 뒤 2004년 서 명예회장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에 부임한 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IFRS 도입을 선도적으로 밀어부쳤다. 이후 2007년엔 삼일회계법인에 대한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삼일미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삼일회계법인을 ‘공적 기구’로 사회에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물러나면 우수한 사람이 와서 이 자리를 잇고, 그 뒤에 또 다른 이가 지속적으로 이어주는 공적 법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생각이 앞으로도 법인의 방향에 구심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는 격동기를 맞고 있는 회계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좀 더 자유로운 사업 진출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셀프오딧(Self Auditㆍ자기가 평가한 회사를 자기가 감사하는 것)’만 금지하고 나머지는 허용되길 바란다고 했다.

“2000년대 초 엔론사태 이후 회계 법인들이 컨설팅ㆍ세무업무ㆍ변호사 업무 등을 못하는 금지 규정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런 규정이 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셀프오딧’은 자기가 평가한 것 중 잘못된 부분을 가릴 수 있으니 금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부분엔 자유를 줘야 합니다. 회계 감사 업무는 규제와 감시가 많기 때문에 확장하기 쉽지 않습니다. 컨설팅이나 여러가지 딜 등이 더 가능해지면 창의적인 업무 수행을 통해 회계 시장도 더 커질 것입니다.”

김지헌 기자/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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