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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 카페]유안진시인 심연에서 건져올린 에세이
등단 50년을 넘긴 유안진 시인의 글에는 나이듦이 비치지 않는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시집과 시선, 산문집을 냈지만 그때마다 연륜과는 또 다른 팔딱이는 싱싱함이 있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여전히 팽팽한 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가톨릭출판사)는 시인이 모처럼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성찰한 글들로 엮었다. 


일상의 소소한 발견과 사색을 중심으로 한 에세이에서 시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글감은 37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와 그 동네 얘기다. 그가 산책길에 종종 들린다던 동네 책방 얘기를 아는 이들에게 시인의 동네는 왠지 정겹다.

시인은 밤에 산책하길 즐겨하는데, 걸으면 생각이 떠올라 때로 시를 얻는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발바닥이 시를 쓰는 셈이다. 마산 특유의 사투리에서 반어적시작 기법을 배웠다는 ‘가고파’의 도시에서의 젊은 시절의 추억, 지금은 댐으로 수몰된 동화와 전설이 된 어린시절의 시골마을 이야기 등은 누구나의 추억으로 이끈다.

가족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오랫동안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잠겨있던 마음을 풀려는 시인의 고백, ‘지는게 이기는 거다, 안 지면 못 이긴데이’‘밤잠 원수 없다 자고 나면 지젤로 해결되어 있데이’‘어미란 꺼멍색이지러’ 등 숱한 어록을 남긴, 시의 원천인 어머니를 평생 울궈먹었다는 시인, 평생 친구이자 동반자로 금슬 좋던 남편을 잃은 슬픔과 손주들의 예쁨에 활짝 미소짓는 일상의 희노애락의 진솔한 고백은 따스한 울림을 준다.

아파트 잔디밭의 잡초를 뽑는 게 맞는지 아닌지, 지하철 진상 승객과 실강이하며‘훈장티’낸 얘기는 그 답다. 타인을 향한 듯하지만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시인의 사유와 글의 작은 개울이 가 닿는 곳은 신앙의 자리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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