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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박상근 세무회계사무소 대표]한국이 ‘조세피난처’라니, 정부는 뭐 했나
유럽연합(EU)이 지난 5일 한국을 ‘조세피난처(tax haven)’로 지정했다. 조세피난처는 법인과 개인의 소득에 세금을 거의 부과하지 않는 나라를 말한다. 탈세와 돈 세탁의 온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 EU가 발표한 조세피난처 17개국 명단을 보면 당혹스럽다. 파나마, 바레인, 그레나다, 괌, 마카오, 마셜제도, 트리니다드 토바고, 사모아 등 저개발국이 대부분이다. 높은 법인세율을 가진 한국이 왜 조세피난처가 됐는지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EU는 한국이 외국인투자지역과 경제자유구역 등 경제 특구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에 5년간 세액의 100%, 그 뒤 2년간 50%를 깎아주는 조세감면(조세특례제한법 제121조의 2)을 문제 삼았다. 이 제도는 외자 유치를 위해 1962년부터 있어왔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입법화되어 현재까지 20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지나왔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감면이 왜 이제 와서 문제가 된 걸까.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 해당 여부를 조사해왔다. 다국적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서 ‘금융업’이 주요 대상이었다. 현재 ‘트리니다드 토바고’ 1곳이 지장돼 있다. 그런데 유럽연합이 올해부터 별도로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OECD와 달리 ’제조업‘까지 범위를 확대했는데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했는지 의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 감면제도는 OECD 국가 중 한국과 터키만 운영 중인데 터키는 제도 개선을 약속한 대가로 조세피난처 명단에서 빠졌다”며 “우리는 외국인투자의 중요성 때문에 당장 제도를 손 볼 수 없다”고 밝히면서 “EU가 이번 명단 지정을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가 외국인 투자 유인책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의 외국인 투자 감면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됐다는 근거가 없다. 다른 나라는 법인세율을 내리는 정석으로 간 것이다. 그동안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이 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정부가 무시하다가 망신을 자초한 면이 크다.

2015년 외국인투자법인 감면은 101개 기업에, 1865억 원에 불과하다. 반면에 기업 존속 기간 내내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은 올해 22%에서 25%로 올랐다. 여기에 한국은 노동경직성이 강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ㆍ비정규직의 정규직화ㆍ노동시간 단축 등 반(反)기업정서가 강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투자 환경에서 사업 초기 몇 년간 세금을 깎아준다 해서 외국인투자자가 선뜻 국내 투자에 나설 것 같지 않다.

지금 세계는 기업 유치 전쟁 중이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늘리려면 법인세 인상, 외국인 투자에 대한 차별적 조세 특혜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조세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 창업생태계 혁신, 규제완화 등 조세외적 요인을 개선해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이것이 지구촌시대에 외국인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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