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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회동 취소한 정부…기업인 소통 언제까지 ‘쇼잉’만 할 것인가
청와대 실세 보좌관과 재계 고위 경영진과의 비공개 만찬이 돌연 무산됐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과 8대 그룹 핵심 경영진의 만찬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뒤다. 만찬은 20일 저녁으로 예정돼 있었다. 말그대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청와대는 당초 회동의 취지였던 허심탄회한 소통의 취지가 언론 보도로 훼손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번 회동에 참석하려던 재계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그룹의 대외협력을 담당하는 최고위 경영진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윤부근 부회장이 나섰다.

이어 정진행 현대차 사장, 하현회 (주)LG 부회장, 장동현 SK(주) 사장, 황각규 롯데 사장, 오인환 포스코 사장, 홍순기 GS 사장, 여승주 한화 사장 등이 참석자에 이름을 올렸다. 김 보좌관은 차관급이다. 참석자의 면면에서 만찬 회동을 대하는 재계의 부담감이 여실히 엿보인다.

청와대와 재계의 만남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요 대기업을 빼놓고는 한국 경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차지하는 비중과 파급력이 막대하다. 대기업과의 협업 없이는 정부의 경제 정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 보좌관이 생각한 만남의 취지도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남에 특별한 의제도 없었다. 재계 경영진과의 자연스런 소통의 자리다.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동시에 정부 정책에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현 정부의 기업관이다. 정경유착의 대상으로 낙인 찍힌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하다. 현 정부와 국민의 시선에 가득하다.

기업, 특히 재벌과 대기업들은 개혁의 대상, 부정의 대상이다. 그래서 이들은 올 한 해 줄곧 정부와 국민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재계는 그래서 오히려 이번 만찬에 적잖은 기대감을 가졌다. 김 보좌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성장론’의 설계자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대변되는 J노믹스의 브레인이다. 그래서 김 보좌관과의 만남을 계기로 현 정부 출범 이후 ‘패싱’의 대상이던 재계와의 소통 창구가 복원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회동은 취소됐다. 취소의 기저에는 여전히 대기업들과의 비공개 만남에 부담을 느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아직도 대기업들은 비공개로 만나기에는 부담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소통을 명분으로 남발되는 재계와의 만남만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재계와의 만남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미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충분하다. 주선은 대한상공회의소가 맡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경제부처 수장들과의 만남이 모두 대한상의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엔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만남이 청와대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쩍 만남이 잦아지는 모양새다. 아예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전면에 나섰다. 주요 그룹을 직접 찾아 총수들과 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지난주 LG그룹이 시작이었다. 이날 김 부총리는 LG그룹을 협력업체 상생에서 모범이 되는 기업이라 추켜세웠고, LG는 내년 19조원 투자와 1만명 고용ㆍ협력사와 상생 협력에 8500억원 규모 기금 조성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들린다. 만남만 있을 뿐 최저임금인상,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등 기업 경영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정책들에는 기업의 목소리가 전혀 담기지 못하고 있다.

본질은 소통을 명분으로 한 만남이 아니다. 정부의 기업관이다. 만남의 이유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현 정부는 기업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J노믹스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선 기업의 존재가 절실하다. 이 정책엔 일자리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상황판까지 내걸고 있는 정부다.

언제까지 부처 장관들과의 형식적인 만남만 이어질 지 재계는 속앓이만 하고 있다. 환하게 미소 짓고, 악수하며 사진을 찍는 게 다가 아니다. 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에서 소득이 생긴다.

기본적인 이 철학이 자리잡지 못하면 소모적인 ‘쇼잉’만 반복될 뿐이다. 기업의 협조를 바라면서 기업을 부정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건 또 다른 자기부정일 뿐이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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