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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중기획-작은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송년회 에티켓] 송년회, 3·4차 예사…상의도 않고 연휴전 불금이라니…
연말 가뜩이나 다른 약속 많은데
‘부어라 마셔라’아직도 강압적

술자리 대신 등산도 고통스러워
정상에서 웬 한해 소감·포부?


직장인들에게 더이상 송년회는 한해의 업무를 정리하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단합의 장’이 아니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이어지는 술자리 일변도의 송년회에 ‘마지못해’ 자리를 지킨다고 실토했다.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부담스러운 행사’로 느끼고 있다. 지난해 서울디지털대학교가 20~50대 810명을 대상으로 ‘송년회’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과반수가 넘는 56.7%가 “송년회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나이를 막론하고 더이상 송년회가 즐거운 자리가 아닌 셈이다. 송년회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 중 가장 많은 32.2%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29.8%는 “과음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늦게까지 술자리에 붙잡는 상사가 송년회를 ‘피하고 싶은 자리’로 만드는 1순위다. 대기업 건설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29)씨는 연말 송년회 일정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속이 쓰려온다. 업종 특성상 가뜩이나 수시로 술자리 회식이 이어지는데 송년회만 되면 술자리가 더 길어지고 강압적인 분위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김씨는 “나이 많은 40~50대 과장들은 집에 가면 가족들에게 잔소리만 들을 게 뻔해 2차는 물론 3, 4차까지 달리다 보니 부서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라며 “평소에 좀 자제하는 분위기의 상사들도 송년회라면 괜찮다고 생각해 억지로 술자리에 남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손사래를 쳤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남녀 1285명을 조사한 결과 송년회를 갖겠다고 답한 응답자 10명 중 7명(74.3%ㆍ복수응답)은 송년회를 어떻게 보낼지 묻는 질문에 “술자리를 가질 것”이라고 답했다. 흥청망청 술을 먹는 송년회에 대한 반감은 크지만 마땅한 대안도 못찾은 셈이다.

다음으로는 ▷간단한 식사(48.8%) ▷호텔이나 펜션 등을 빌린 파티(22.9%) ▷국내여행(12.1%)이 뒤를 이었다. 사내 송년회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콘서트ㆍ뮤지컬 등 공연 관람은 11.8%로 아직은 흔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 개인 일정은 고려하지않고 일방적으로 송년회 날짜를 잡는 회사의 ‘무신경함’도 직장인을 화나게 만든다. 대기업 경영지원팀에 입사한지 1년 차인 이모(27) 씨는 “회식은 보통 목요일에 잡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회사는 크리스마스 연휴 바로 전날이자 불금인 22일에 잡았다”면서 “다음날부터 3일 연속 휴일이니 일찍 술자리를 빠져나오기도 힘들어 연말이 피곤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지는 술자리에 건강도 걱정이다. 직장인 이모(30)씨는 “여기저기서 제안이 와 1주일에 3~4일은 술자리가 잡혔다”면서 “간이 걱정돼 신년회로 미룰 수 있는 약속은 미루려고 한다”고 했다.

술자리를 기피하는 직원들의 변화에 발맞춰 남다른 형식의 송년회를 준비하는 기업도 없지는 않다. 스타트업 대표 배모(34) 씨는 “굳이 송년회를 술자리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부서원들과 카페에서 차와 디저트를 먹으려 한다”면서 “1년에 한번이니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하지만 말 그대로 화합의 장이니 부서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는 함께 스키장을 가거나 영화관에 가는 등 문화생활로 송년회를 대체하는 추세다.

그러나 형식을 술자리에서 다른 형태로 바꾼다고 구성원들이 반드시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안모(27)씨는 “회사에서 송년회 대신 매년 등산을 가는데 주변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회식이 아니라서 부럽다는 말도 있지만 정상에서 한해 소감, 포부를 발표하는 것도 엄청나게 고통스럽다”면서 “평소에 나에게 관심도 없는 상사들이라면 뭘 같이 해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대도, 사람도, 문화도 바뀌었는데 철옹성같은 ‘송년회=술’ 공식은 수십년간 변함이 없다. 상사도, 부하직원도 같이 즐겁거나 최소한 의미있는 자리가 되도록 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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