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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중기획-송년회 에티켓①]아직도 술ㆍ술ㆍ술…“송년회, 안하면 안 되나요”
-과음 조장ㆍ건강걱정에 57%는 “송년회 부담”
-일각에서 문화생활 등 송년회 방식 변화
-직장 문화 변화 없이는 형식 바뀌어도 ‘도루묵’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늦게까지 술자리에 붙잡는 상사가 송년회를 ‘피하고 싶은 자리’로 만드는 1순위다. 대기업인 건설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29)씨는 연말 송년회 일정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속이 쓰려온다. 업종 특성 상 가뜩이나 수시로 술자리회식이 이어지는데 송년회 자리만 되면 술자리가 더 길어지고 더욱 강압적인 분위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김씨는 “나이 많은 40~50대 과장들은 집에 가면 가족들에게 잔소리만 들을 게 뻔하니 2차는 물론 3,4차까지 달리면서 부서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라며 “평소에 좀 자제하는 분위기의 상사들도 송년회라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억지로 술자리에 남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손사레를 쳤다.

직장인들에게 더이상 송년회는 한해의 업무를 정리하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의미있는 단합의 장’이 아니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이어지는 술자리 일변도의 송년회에 ‘마지못해’ 자리를 지킨다고 실토했다. 

직장인 과반수는 음주 일변도인 송년회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이 문화생활 등 송년회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조직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큰 효과가 없다는 게 직장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진=헤럴드경제DB]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부담스러운 행사’로 느끼고 있다. 지난해 서울디지털대학교가 20~50대 810명을 대상으로 ‘송년회’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과반수가 넘는 56.7%가 “송년회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나이를 막론하고 더이상 송년회가 즐거운 자리가 아닌 셈이다. 송년회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 중 가장 많은 32.2%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29.8%는 ’과음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36) 씨는 “꼭 자정을 넘겨서 술을 마셔야 송년회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꼭 재미도 없고 유치한 건배사를 시키고 막차로 노래방까지 가자고 잡는다”고 했다.

직원들의 개인적인 일정은 나몰라라 하고 일방적으로 송년회 날짜를 잡는 회사의 ‘무신경함’도 직장인을 화나게 만든다. 대기업 경영지원팀에 입사한지 1년 차인 이모(27) 씨는 “회식은 보통 목요일에 잡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회사는 정말 눈치 없게도 크리스마스 연휴 바로 전날이자 불금인 22일에 잡았다”면서 “다음날부터 3일 연속 휴일이니 일찍 술자리를 빠져나오기도 힘들어 연말이 피곤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변에는 연말 연휴 전날인 29일에 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거기보다 낫다고 위안을 삼아야겠다”고 했다.

이어지는 술자리에 건강 부담도 크다. 직장인 이모(30)씨는 “연말이라고 여기저기서 송년회를 하자고 제안이 오는데 어디는 가고 어디는 안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약속을 잡다보니 1주일에 3~4일은 술자리가 잡혔다”면서 “간 건강이 걱정돼 신년회로 미룰 수 있는 약속은 미루려고 한다”고 했다.

술자리를 기피하는 직원들의 변화에 발맞춰 남다른 형식의 송년회를 준비하는 기업도 없지는 않다. 스타트업 대표 배모(34) 씨는 “굳이 송년회를 술자리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부서원들과 카페에서 차와 디저트를 먹으려 한다”면서 “1년에 한번이니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하지만 말 그대로 화합의 장이니 부서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는 함께 스키장을 가거나 영화관에 가는 등 문화생활로 송년회를 대체하는 추세다. 일본의 대표적 애니메이션 기업인 스튜디오 지브리의 경우, 전직원이 송년회의 차원에서 전직원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형식을 술자리에서 다른 형태로 바꾼다고 구성원들이 반드시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안모(27)씨는 “회사에서 송년회 대신 매년 등산을 가는데 주변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회식이 아니라서 부럽다는 말도 있지만 정상에서 한해 소감, 앞으로의 포부를 돌아가면서 말하도록 해 엄청나게 고통스럽다”면서 “평소에 나에게 관심도 없는 상사들이라면 뭘 같이 해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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