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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오래 전 학생 때 경험한 사건(?)이다. 미국 대학 캠퍼스는 상당히 넓다. 넓을 뿐만 아니라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지도 않다. 독지가들이 자기 집이나 건물을 대학에 기증한 때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런 이유로 짧은 시간에 캠퍼스를 다 돌아보는 일은 귀찮은 일이다.

그 대학에 지망할 학생이나 학부형들은 지원하기 전이나 입학허가를 받은 후 캠퍼스 투어를 한다. 강의실은 물론이고 체육관, 수영장, 보건소 등 부대시설의 위치를 미리 알아두기 위해 구내를 돌아다닌다. 어떤 학교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특정일을 정해 학교 안내를 돕기도 한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캠퍼스를 쉽게 돌아 볼 있게 한 가지 묘안을(?) 냈다. 그 대학의 상징이 호랑이였다. 까만색과 노란색으로 학교관련 홍보물이나 안내판을 만들어 쓰고 있다. 캠퍼스 투어를 위해 학교 내 인도에 까만색과 노란색으로 선을 그어 놓았다. 그것을 따라 가면 캠퍼스를 쉽게 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지금 고속도로에 그어진 하이패스 안내 선과 흡사하다.

도로에 선을 긋자 시청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도로는 시청 재산인데 왜 대학이 허가도 없이 남의 재산에 색깔을 칠했느냐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대학은 그 중 일부분은 대학 재산이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맞섰고 법정으로 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시민을 위해 일하는 공공기관과 지식과 상식으로 가득 찬 두 기관이 현명하게 타협하라고 판결했다. 법이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솔로몬 같은 결정이다.

하찮은 일을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조교도 근로자인데 대학이 적법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 관계자들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보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서울고용청은 조교의 업무형태나 내용이 일반직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대학이 조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리나 형식논리로 보면 백번 맞는 일이다. 또 법과 원칙을 입에 달고 사는 공무원의 구미에 딱 맞는 조처이다.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했다. 대학에서 조교라는 직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거나 도외시한 결정이다. 조교는 교수와 함께 밤을 새우며 연구하고 때로는 일반인이 상상도 못하는 궂은일을 하기도 한다. 진을 빼는 연구의 어려움, 방대한 자료에서 옥석을 가리는 지혜 그리고 강의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공부하는 방법을 공짜로 체득하기도 한다.

고용노동청의 이번 결정은 조교의 직위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대학 문화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잘못된 처사라는 생각이다. 대학에서 조교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현장이고 도제교육의 중요한 줄기인데 이를 고용-피고용의 관점에서 판단한 때문이다. 대학이나 교수들의 못난 짓이 도마에 오르지만 이것은 개별 사안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다. 일반화할 수 있는 사안은 결코 아니다. 본질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융통성 있는 행정이다. 케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하라는 성경말씀을 고용노동청 관계자들이 한번쯤 곰씹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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