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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있는 사람 폐 일부 떼어 이식하는 생체 폐이식…국내 최초 성공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국내 의료진 중 처음
-폐부전 걸린 20代 딸에게 부모 폐 일부 이식해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뇌사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폐 일부를 떼어 내어 이식하는 생체 폐 이식에 국내 의료진이 최초로 성공했다. 생체 폐 이식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후 2010년까지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400회 이상 시행돼 왔다.

15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폐 이식팀은 지난달 21일 말기 폐부전으로 폐의 기능을 모두 잃은 오화진(20ㆍ여) 씨에게 아버지 승택(55) 씨의 오른쪽 폐 아랫부분과 어머니 김해영(49) 씨의 왼쪽 폐 아랫부분을 각각 떼어 이식해 주는 생체 폐 이식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화진 씨는 건강하게 회복 중이라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폐는 우측과 좌측, 각각 세 개와 두 개의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폐암 환자가 폐의 일부를 절제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생체 폐 이식은 기증자 두 명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 폐부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으로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 안전한 수술법이다.

화진 씨는 2014년 갑자기 숨이 쉽게 차고, 체중이 증가하며 몸이 붓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폐동맥의 혈압이 높아져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내보내기 어려워져 결국 심장의 기능까지 떨어지는 특발성 폐고혈압증으로 진단받았다. 지난해 7월 심장이 정지됐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다시 심장마비가 오면 소생 확률이 20%에 불과한 상태가 됐다.

오화진 씨는 공교롭게 생체 폐 이식 수술을 받고 6일이 나 깨어난 지난달 27일 중환자실에서 20번째 생일을 맞았다. 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일반 병실로 옮겨 회복 중인 화진 씨를 위해 생일 케이크를 전달하며 축하해 주고 있다. 왼쪽부터 박 교수, 화진 씨 어머니 김해영 씨, 화진 씨, 아버지 승택 씨. [제공=서울아산병원]

하지만 국내 이식 수술 규정상 우선적으로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기 위해서는 폐 질환이악화돼 인공호흡기나 에크모(ECMO) 장비 등을 장착할 정도로 몸 상태가 심각한 환자만 가능하다. 또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기 위한 평균 대기 기간이 4년에 가까운 1,456일(2016년 국립장기이식센터 기준)이나 됐다. 서울아산병원에서만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뇌사자 폐 이식 대기자 68명 중 절반 가까운 32명이 사망했다.

이에 화진 씨의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본에서 생체 폐 이식으로 명성이 높은 교토대병원의 다테 히로시 교수에게 해외 원정 이식을 위해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생체 폐 이식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일본은 1ㆍ3ㆍ5년 생존율이 각각 93ㆍ85ㆍ75%로, 국제심폐이식학회의 폐 이식 생존율보다 우수하다. 이미 의학적 안전성을 인정받아 생체 폐 이식 수술이 꾸준히 시행되고 있다.

때마침 폐 이식팀은 딸을 살리기 위해 병원을 찾아 온 화진 씨 부모를 만나, 그들의 간절한 요청을 듣게 됐다. 폐 이식팀은 2008년부터 수차례 다테 교수를 찾아가 생체 폐 이식 수술의 노하우를 이미 전수받았다. 

생체 폐 이식 수술 모식도. [제공=서울아산병원]

폐 이식팀은 대안을 찾기 위해 긴급 회의를 열었다. 현행법상 폐는 생체 이식 대상 신체 부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1조를 보면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적출할 수 있는 장기는 ▷정상인 신장 2개 중 1개 ▷간장ㆍ골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기 등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일부로 돼 있다.

그러나 폐 이식팀은 화진 씨를 살리기 위해 지난 8월 생체 폐 이식 진행을 위한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ㆍ의료윤리위원회를 정식 개최했다. 대한흉부외과학회ㆍ대한이식학회에 의료윤리적 검토를 의뢰했다. 아울러 정부 기관ㆍ국회ㆍ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ㆍ대한이식학회에 사례를 보고해 화진씨를 위한 생체 폐 이식 수술의 불가피성을 설득해 나갔다.

다행히 폐 이식팀은 긍정적 답변을 받고 지난달 21일 생체 폐 이식 수술에 무사히 성공했다. 수술을 직접 집도한 흉부외과 외에 마취과,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감염내과 등의 교수진, 간호사, 심폐기사까지 의료진 50여 명이 투입됐다.

화진 씨는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후 6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뗐다. 이달 6일에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딸을 위해 폐의 일부를 기증했던 화진 씨 부모도 수술 후 6일 만에 퇴원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화진 씨는 “수술 전 숨이 차서 세 걸음조차 걷기 힘든 상황에서 아버지, 어머니,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며 “수술 후 6일 만에 처음으로 의식이 돌아온 날이 마침 생일이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감격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술을 집도한 이 병원 흉부외과의 박승일 교수도 “생체 폐 이식을 국내 최초로 성공해 기쁘게 생각한다”며 “뇌사자 폐 이식을 기다리다 상태가 악화해 사망하는 환자를 비롯해 소아 환자들에게 또 다른 치료법을 제시한 중요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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