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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성의 땅 페루, 천혜의 식재료 … 음식은 새로운 생태계 경험할 기회”
[리마(페루)=고승희기자] 비르힐리오 셰프는 휴지를 한 장 뽑더니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구긴 뒤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페루의 지면은 구겨진 휴지와 같아요. 안데스, 사막, 정글로 이어지고 그 안엔 높은 지대가 있고, 낮은 지대가 있어요. 지대마다 기후의 다양성을 보이죠” 전 세계에 존재하는 150개 지역의 날씨 중 페루엔 무려 120개 지역의 날씨가 존재한다. 축복받은 ‘천혜의 환경’이다. “서로 다른 기후와 높이마다 자라는 작물들이 달라요. 아스파라거스, 감자, 카카오, 커피, 올리브가 그렇죠. 태평양과 아마존의 생선도 있고요.”

다양성을 지닌 이 땅의 환경은 지금의 센트럴 레스토랑을 있게 했다. 센트럴에선 페루의 “18개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한 접시 안에” 담고 있다. “페루의 생태계를 담아낸 음식을 통해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페루의 다양한 생태계를 한 접시 안에 담을 때에는 ‘셰프만의 법칙’이 있다.
“한 접시 안에는 한 구역만 담아요. 예를 들면 생선과 커피를 한 접시에 담지 않죠. 한 지역에서 자라지 않으니까요. 생선이 메인이라면 미역, 조개가 어우러지고, 해변의 모래가 장식될 거예요. 함께 자라는 작물이라야 한 접시 안에 담길 수 있어요. 그래야 그 안에서 조화가 나오니까요.”

비르힐리오 셰프가 접시마다 구현하는 세계는 곧 ‘페루’ 자체다. 아무리 진기하고 값진 식재료일지라도, 셰프로서 욕심나는 재료가 있을 지라도 페루에서 생산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로컬푸드를 통한 철저한 ‘현지화’로 메뉴를 구성하는 것이 ‘철칙’이다. 거기에 반드시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되, ‘뿌리부터 잎까지 버리는 것 없이 쓴다’는 요리사로의 ‘철학’도 담겨있다.

해발 2800m인 ‘하이 정글’(High Jungle) 요리에선 ‘밀림의 눈썹’으로 불리는 장식용 돌과 카카오계 열매인 마캄보(Macambo)로 만든 빵, 에어 포테이토(Air potato)가 곁들여진다. 해발 400m 요리인 ‘아마존의 색감’(Colors Of Amazonia)에선 아마존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빠이체(Paiche)와 이 지역에서 자라는 야콘, 레몬그라스를 더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페루의 생태계가 입 안에서 생동한다. 비르힐리오 셰프의 독착정인 발상과 창의력은 페루 요리를 한 단계 끌어올리며 전 세계 미식가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요리사의 길을 걸으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자 했어요. 해발 4000m의 생태계를 리마로 가져와 어떻게 요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해요. 그게 당연한 의무죠. 그 의무가 요리하는 사람으로서의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비르힐리오 셰프의 주무대는 ‘키친’(부엌)이지만 그가 ‘영감’을 얻는 곳은 ‘키친 밖’인 세상의 한복판이다. “우리는 뭘 가졌는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새로운 곳을 찾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도시에선 안데스나 아마존과 같은 청정지역의 생태계를 볼 수가 없어요. 저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농민들을 이어주는 중개자예요. 농민들에겐 작물의 가치와 의미를 해석해주고, 도시엔 쉽게 갈 수 없는 지역의 생태계를 나만의 감성과 창의력으로 재해석해 음식으로 보여줘요. 그들 사이의 다리를 놓는 통역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티스트’와 같은 발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셰프’로 꼽히면서도 페루의 정체성을 담는 그에게 셰프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연’이다.

“페루의 미래는 안데스와 아마존에 있어요. 가장 더럽혀지지 않은 땅이고, 가장 자연과 가까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죠. 요리사는 그들을 통해 더 많이 배워야 해요.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식재료를 얻고, 좋은 음식을 만들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예요. 맛만 좋은 요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문화와 스토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해야죠.”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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