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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적이며 사소한 일…그러나 정치적이며 거대한 일
-13일 개막한 연극 ‘옥상밭 고추는 왜’
낡은 빌라서 키운 고추놓고 벌어진 다툼
알고보니 뒷면에 숨은 거대한 갈등
-촛불-태극기 집회 극단적 대립 ‘닮은꼴’
최근 벌어진 한국정치 단면 그대로 투영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 독일의 사회 운동가 페트라 켈리(Petra Kelly)의 말은 누군가에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이 그에겐 세상이자 전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3일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재건축을 앞둔 낡은 빌라 옥상에 열린 고추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가장 개인적인 일이 가장 정치적인 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3일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재건축을 앞둔 낡은 빌라 옥상에 열린 고추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사소한 개인적인 일이 큰 정치적인 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장면들.

앞서 ‘햇빛샤워’ ‘환도열차’ ‘여기가 집이다’ 등 특색 있는 연극을 선보여온 장우재 작가와 서울시극단 단장인 김광보 연출이 11년 만에 만나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장 작가는 과거 자신이 살던 오래된 연립주택에서 한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가 키운 고추의 절반 이상을 따가 버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극을 구성했다.

수십 가구가 모여 사는 연립 주택의 옥상, 304호 사는 ‘광자’는 스티로폼 상자에 고추 묘목을 심어 매일 같이 물을 주고 진딧물을 손으로 잡으며 정성스레 키운다. 고추가 자라면 이웃과 나눠 먹을 마음이었지만, 201호 사는 ‘현자’는 혼자서 고추를 수십 개, 수백 개씩 따서 가버린다. 광자가 이에 항의하자 현자는 “혼자 사는 년”이라고 조롱하고 “원래 옥상 땅은 내 소유니 고추도 내 것”이라며 억지를 부린다.

실랑이 끝에 고혈압을 앓던 현자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이 광경을 목격한 301호의 가난한 단역배우 ‘현태’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현태는 “광자에게 고추란 삶의 희망이자 사는 낙”이었는데 현자 때문에 “나누는 것이 빼앗는 것”이 되었고 “어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을 빼앗는 것은 살인과 다를 바 없다”며 현자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현자도 할 말은 있다. 여상을 졸업한 뒤 전화국에서 정년까지 일하며 자신을 산업화를 이끈 역군 중 한 명이었다고 생각하는 현자가 보기에 “혼자 사는 년” “세 사는 사람들”은 무시해도 좋을 부류다. 재건축과 아파트 분양권 등을 통해 풍족한 노후를 꿈꾸는 현자는 현태가 광자 때문에, 그깟 고추 몇 개 때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에 분노한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별것도 아닌 일로 다 나서서 진짜 노력한 사람들한테 기대서 살려고 한다”면서.

사실 현자가 광자를 미워하고, 애써 키운 고추를 몽땅 따간 진짜 이유는 광자가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있는 ‘빌라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웃 간 고추를 따가는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이 사실은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대립이었으며, 결국에는 매우 정치적이고 거대한 일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광자와 현자 사이의 다툼과 현태와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사과 요구 시위에도 빌라에 사는 다른 주민들은 이 일에 큰 관심이 없다. 303호 ‘지영’은 오직 자신의 교수 임용에만 매달리느라 바쁘고, 203호 동사무소 직원 ‘주연’은 현태의 시위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따지며, 새벽에 들어와 자고 있는 지하 9호 ‘성식’에게 이들의 시위는 아침잠을 깨우는 소란일 뿐이다.

장 작가는 작품의 부제를 ‘도덕(Ethics) vs 윤리(Morals)’라고 붙였다. 도덕이 사회유지를 위해 다수 사회 구성원이 옳다고 따른 관습이라면, 윤리는 개인이 스스로 어떤 것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세운 기준이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각자의 도덕과 윤리가 혼재되고 충돌하는 상황 속에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김 연출은 “지난 겨울 광장에서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사이의 단절과 갈등을 겪었을 때처럼, 우리의 사소한 일상 속에 정치적인 모습이 녹아있음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수희, 이창훈, 유성주, 이창직, 문경희, 한동규, 최나라 등 출연. 오는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관람료 2~5만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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