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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 현수막 잡는 공포의 ‘흰색 트럭’
서울시 ‘기동정비단’ 동행 취재
전자가위 등 무장…걸리면 ‘싹둑’
4~5m높이 매다는 꼼수 안통해
한번 순찰 때 80~100개씩 제거
정당 등선 “왜 없애나” 전화 폭탄
“1년새 불법 70% 줄여 미관 산뜻”


“이거 보세요. 단속 한번 피해보겠다고 얼마나 높은 곳에 매다는지….”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문정동 건영아파트사거리에 있는 한 전봇대 앞. 김종효(62) 서울시 불법광고물기동정비반장은 얼추 봐도 4m 이상 높이에 걸린 불법 현수막을 가리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트럭으로 향하더니 짐칸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이런 ‘꼼수’를 처단하기 위해 정비단이 낚시대를 개조해서 만든, 최대 3.5m까지 늘어나는 전지가위였다. 능숙한 손놀림에 불법 현수막은 힘없이 떨어졌다. 김 반장은 “단속망을 피하려고 온갖 수를 다 쓰지만, 그래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며 “우리 눈에 걸린 이상 얄짤 없다”고 자신했다.


공포의 ‘흰색 트럭’이 떴다. 하루종일 서울 곳곳을 누비면서 불법 현수막만 싹둑 잘라내는 불법광고물기동정비단이 운전하는 차량이다. 우후죽순 개최되는 행사들로 불법 현수막이 넘쳐나는 가을, 3명의 정비반과 함께 그 현장을 돌아봤다.

법상 관할 자치구의 허락없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게시대가 아닌 전봇대 등에 내건 현수막은 불법으로, 모두 제거 대상이다. 도시미관을 저해하며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위험이 있어서다.

한 시간여 만에 떼낸 게 모두 22개로, 2분30초당 1개를 잘라낸 셈이다. 한번 순찰하면 기본 80~100개, 많을 때는 하루에만 170개를 없애기도 한다는 게 정비반의 설명이다.

요즘엔 단속을 피하는 기술도 진화했다. 손이 닿지 않는 4~5m 높이에 현수막을 걸고 늦은 밤과 새벽, 주말에만 걸다 떼버리는 ‘게릴라’도 선보인다.

저쪽이 뛰면 이쪽은 나는 법. 김 반장은 “가위로 안되면 트럭 위에 올라가든, 전봇대를 타든 어떻게든 제거한다”며 “게릴라를 막기 위한 새벽, 주말 불시단속도 실시한다”고 했다.

정비반의 최대 난제는 민원이다. 특히 정당ㆍ공공기관 등이 직접 내건 불법 현수막을 제거할 때는 빗발치는 민원을 각오한다. 김 반장은 “단속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불법 행위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이 가운데 십중팔구는 왜 없앴느냐고 ‘전화 폭탄’을 퍼붓는다”고 했다.

이 날 단속 중 길을 지나던 시민들 몇몇은 고생이 많다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자영업자 이영석(45) 씨는 “최근 불법 현수막이 눈에 띄게 준 건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며 “도시를 가꿔가는 숨은 일꾼”이라고 치켜세웠다.

정비반의 일은 온종일 떼낸 불법 현수막을 관할 자치구 안 담당부서 창고로 넘길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자치구는 이를 받아 갯수ㆍ크기 등에 따라 최대 500만원 과태료를 책정하고, 특정기간 찾아가지 않을 때에는 소각 또는 재활용 처리한다.

김 반장은 “이해관계에 얽메이지 않고 오직 현행 법만 기준삼아 도심 미관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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