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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94년 지난 신안선 침몰사건, 드러나는 진상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태풍철 한국(고려)의 항-포구의 지원을 기대하며 연안으로 항해하다 고르지 않은 남-서해 연안 수중 암초에 좌초된 재일 중국인 무역상의 중국 경원(원나라 닝보=항주 동쪽 무역항) 발 일본(카마쿠라 교토 혹은 큐슈) 행, 사찰 및 지도층의 물자 조달선.

1323년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다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신안선’의 비밀이 694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근년들어 일본 승려인 대지선사(大智禪師, 1290~1366)의 전기와 신안선 간 연관성을 새로이 조명하고 고려사의 몇 구절을 종합 분석하면서, 처음 발견된 1975년 당시보다 더 많은 ’팩트 체크에 의한 추론‘이 이뤄졌다. 유물에 대한 정밀분석도 시간이 갈수록 신빙성있는 추론으로 연결됐다.

신안선 선체 골격

중국의 칭위엔 ‘텐둥찬사(天童禪寺)’에서 유학한 대지선사의 전기에 의하면, ‘1323년 귀국하던 중 흑풍을 만나 고려 연안에 표류하여 (살아 남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이) 고려 충숙왕을 알현했다‘는 것이다.

고려사에는 충숙왕 11년(1324년) 7월 19일 ’표류민 220여 명을 일본으로 귀국 시킨다‘는 기록이 있다. 약 1년가량 고려에 머물며 부상, 외상후 스트레스 등을 치료한뒤 안정된 심신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보인다.

신안선은 세 개의 돛을 가진 260t 규모의 범선으로 용골과 격벽을 갖춘, 당시로선 최첨단 중국식 원양무역선이다. 일본인 선원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선주는 공급자인 중국과 수요자인 일본을 오가며 물자를 조달해주는 재일 중국인으로 추정된다.

배에서는 일본인의 칼 일부분, 일본식 장기알, 나막신, 동복사 등 일본 주요 사찰의 목간이 발견됐다. 아울러 원나라 지대통보 등 28톤이 넘는 화폐가 나왔다. 선적장소는 중국. 수입대금을 지불하고 남은 돈일 가능성이 있다.

선적 장소 즉 유물을 싣고 떠난 항구는 ’경원로‘라는 글자가 새겨진 추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중국 항저우 동쪽 항구 칭위엔(慶元:경원:당시 닝보)이다. 경원에서 일본의 관문인 큐슈쪽 직항로는 이 배가 출항했던 음력 6월(한여름) 풍랑이 거세다. 따라서 물건을 줘야하고 위험을 최소화해야하니 한국 남서해안 연안항로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차 하면 한국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여러모로 선진화하지 못한 일본은 사찰의 건축이나 중건 비용, 물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으로 무역단을 파견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당시 일본의 승려는 사회지도층의 한 축이었다. 대지선사는 침몰사건 후일담을 기록에 남긴 것으로 보아, 이 조달작전의 중책을 맡을 인물로 침몰을 감지한 후 몇몇 선원과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체에는 홀수선 아래 가로로 길게 암초에 스친 흔적이 깊게 남아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 물살이 불규칙하고 수중 지형을 정확히 알수 없는 곳이기에 수중 암초에 의한 좌초설이 힘을 얻는다.

치명적인 파손때문에 급속한 침몰을 막아보려고 물건을 일부 버린다. 배가 건져진 곳 남서쪽 1~2㎞ 지점에서 유물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그같은 추론을 낳는다.

특별전시에 나온 신안선 유물들

고려인의 숟가락, 고려청자까지 발견된 점에서 이미 한국측 지원을 받았거나, 한국에도 일부 거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청자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 명품이었기에 중-한-일 중개무역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중일 간 재거래됐을 수 있다.

귀한 도자기는 차마 버릴수 없어, 침몰 신안선에서는 온전한 도자기만 2만여점이나 나왔다. 사찰용 물품, 지도층이나 넉넉한 가문의 일본인들이 쓸 명품과 생활용품이 많았다. 발견된 자단목은 불상을 만들거나 사찰의 중요한 부분을 세우는데 필요한 재목으로 보인다.

아주 오래전 사건이기에, 신안선 침몰의 진상규명은 서서히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이귀영)가 특별전시라는 이름으로 진상규명 작업을 다시 공론화한다. 오는 12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해양유물전시관 제2전시실(전남 목포)에서 특별전 ’신안선과 그 보물들‘을 연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0차례의 발굴 이후 지금까지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던 4500여 점의 보물들이 실물크기(34m)로 복원된 신안선과 함께 전시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국민들이 이 전시를 구경하면서 저마다의 추론을 내놓으면서 진상규명은 좀 더 속도를 낼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민들이 14세기 바다를 무대로 무역활동을 펼친 아시아 상인들의 삶과 고대 동아시아가 공유했던 문화의 공통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새롭게 제기된 학설 등에 관한 추가 연구를 통해 신안선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월호의 모습도 온 국민에게 특별전시됐으면 좋겠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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