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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섣부른 단정’은 기아차 아닌 재판부가 하는 것 아닌가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게 신의칙(信義則)에대한 해석이다. 신의칙이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 사법의 대원칙이다.

이번 소송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합의사항을 노조가 뒤집은 것이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상호 신뢰를 기초로 노사 합의를 이뤄온 관계를 고려하면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결과가 발생하도록 방관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고 밝혔다. 합의를 무시한 소송 자체가 신뢰의 중대한 훼손이자 경영 불안 요인인데 그런 일을 벌이는 노조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판결에선 신의칙을 배제하면서 소송 당사자인 노조에는 이를 준수할 것이라고 희망하는 셈이다.

재판부는 더 나아가 “근로자들이 마땅히 지급받았어야 할 임금을 후에 추가 지급돼야 한다는 점에만 주목해 ‘기업존립’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단정”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기아차가 미지급 법정수당을 지급하면 자동차업계 전반에 큰 타격을 준다는 데에 공감을 하면서도, 실제 일어나지 않은 가정만으로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대한 경영상 위험은 현재뿐아니라 미래에도 존재한다. 법원이 원고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금액은 4223억원이지만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지급할 금액과, 소송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기간(2년 8개월 치)에 지급할 돈까지 전부 포함하면 1조억원가량의 재정 부담이 발생한다는 게 기아차 주장이다. 안그래도 사드보복 여파로 올해 상반기 중국 판매량이 55%나 급감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기아차다. 충당금 부담으로 3분기 실적은 적자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자동차업계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평균 12.2%로 독일 폴크스바겐(9.5%)이나 일본 도요타(7.8%)보다 높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인건비 상승으로 이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제 곧 평균연봉이 공식적으로 1억원을 넘기게 될 기아차 근로자들은 좋겠지만 회사 경쟁력엔 치명적 악재다.

더 중요한 건 향후 산업계에 미칠 파장이다. 그건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이번 판결로 5000여개 부품업체 중 존폐를 다투는 회사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섣부른 단정은 기아차 경영진이 아니라 재판부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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