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일방통행식 통신비 인하정책 유감
17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았다. 이쯤에서 그동안 쏟아낸 정책을 살펴보자. 비정규직 제로, 부자 증세,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대책 등 어느 것 하나 우리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작은 것이 없다.

정책 추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심도 있는 토론과 소통이 함께 했는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분위기는 우울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ICT 관련 핵심 공약 중 하나인 ‘통신비 인하’가 강행되고 있어서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시작한 통신비 인하 논란은 100일이 지나도록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저마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감정싸움 기류까지 감지된다.
‘기본료 폐지’를 내건 대선 공약,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통신비 인하안 발표,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선택약정) 할인율 20%→25% 상향 추진에 이르기까지, 이 과정에서 가장 선명하게 부각된 것은 ‘일방통행’이라는 비판이다.

여기에 ‘압박’, ‘소통 부족’도 따라붙었다. 과거 수차례 경쟁 활성화를 강조해오던 과기정통부(옛 미래창조과학부)도 어느새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에 ‘목숨을 거는’ 모습이다.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이 높으니 이를 완화해주겠다는 의도 자체는 좋다. 그러나 정책 의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 논리로 작동하는 경제 산업 분야는 더욱 그렇다. 당장은 솔깃하지만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정책이나 공약을 우리는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멀리까지 되짚어 갈 필요도 없다. 이러한 예는 현재도 적용되고 있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당초 단통법은 소비자 차별을 없애고 과도하게 복잡하고 기형적인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법이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 3년이 지난 지금, 단통법은 시장경쟁을 억제하고 대부분의 국민을 ‘호갱(호구 고객)’으로 만든 ‘악법’에 가깝다는 것이 전반적인 인식이다.

무조건적으로 통신 기업을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결국 통신비 인하의 근본 처방은 일방적인 인하정책이 아닌 ‘시장경쟁 활성화’여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경쟁이 요금인하 효과를 내는 예는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버라이즌, AT&T, 스프린트, T모바일 순으로 이통시장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수년간 이어진 T모바일의 적극적인 시장 공세에 서비스 경쟁이 일상화됐다.

T모바일은 2013년 존 레저 CEO 취임 후 ‘언캐리어(Un-carrier)’ 전략을 본격 추진하며 미국 이통시장에서 이례적으로 약정계약을 폐지하고 단말기와 통신을 분리했다. 이후 최근까지도 파격적인 요금제, 서비스를 줄줄이 내놨다. 이에 AT&T와 버라이즌 역시 T모바일을 의식한 여러 서비스를 내놓는가 하면, 올해 초에는 지난 2010년과 2011년 각각 폐지했던 무제한 요금제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결과는 자명했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4월 기준 이통시장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13%나 떨어지며 역대 최대 하락폭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외신보도에서 흔히 접하는 최신 스마트폰을 1+1(Buy 1 Get 1 Free)로 판매한다는 뉴스도 이러한 경쟁의 결과물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이통사간 순위 변동도 일어났다. T모바일이 스프린트를 제치며 3위 사업자로 올라선지 오래다. 경쟁이 실제 요금인하로까지 이어진데다, 사업자 순위까지 바꾼 셈이다.

특히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 대비’라는 산업적 과제를 안고 있다.코앞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구조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보고서를 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AI,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주력 분야의 우리나라 경쟁력은 중국에도 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근간 중 하나는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다. 연결성과 속도가 담보돼야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첨단 산업이 꽃 필 수 있다. 정부의 일방적 내려꽂기 식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5G 네트워크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이 조만간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 관련 논의를 위해 이통3사 CEO를 다시 만난다고 한다.

정부 정책은 결과에 의해 평가받는다. 선한 의도였다고 해서 정책 실패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이라는 선한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깊은 정책적 성찰과 소통을 기대해본다.

yuni@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