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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34년간의 망국(亡國) 조짐
1895년 4월 설립된 사관학교, ‘훈련대 사관양성소’ 조차 친일(親日)이었다. 주한 일본 공사의 건의로 친일 성향 내각이 만들었다. 을미사변으로 반년 만에 폐교되고, 1896년초 새 무관학교 설립이 반포된다.

아관파천 직후 생도 모집이 잠시 중단됐지만, 친일 내각 퇴진 등 정국이 안정되자 그해 9월 민족적 무관학교가 출범한다.박승환(1869~1907)은 이때 이 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앞서, 소년 박승환은 일제 침략이 조금씩 노골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한학과 무술을 모두 익힌다.

열여덟살 부터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충격을 받고, 강한 군대의 리더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무관학교에 들어간다.

강군은 커녕 임금 지키기도 버거운 시절, 근위대 대대장을 하던 1907년, 일제가 헤이그에 밀사를 보낸 고종을 폐위하려 하자 7월19일 궁궐 농성을 시도했으나, 친일 국방장관 이병무의 밀고로 무산된다.

결국 닷새후 ‘정미7적(敵)’의 매국행위와 함께 일제가 내정을 장악했다.

그리고 8월1일, 꼭 110년전, 국군이 해산된다.

박승환은 그날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우리 군이 해산(解散)당한 후, “해산했어? 미역국 먹었네”라는 자조적 말이 유행한다. 산모의 ‘해산(解産)’과 군대 ‘해산’이 같은 발음이라, 산모의 건강식인 미역국까지 미끄러짐, 좌절의 상징이 된다.

망조(亡兆)는 1876년 강화도조약부터, ‘군함도’ 등 숱한 비극을 낳은 망국의 1910년까지 34년간 이어졌다. 임오군란, 제물포조약, 포츠머스조약, 을사늑약…. 기회는 차버리고, 설마, 설마 하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말이다.

적폐 청산은 망조 퇴출이다. 성역도, 보혁도 없어야 한다.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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