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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가온 AI시대…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고민하다
백남준아트센터, 11월 5일까지
만든지 하루 새 폐기된 인공지능
전기자극 통해 일하는 홍합살 등
다양한 시각으로 관계설정 탐문
국내외 아티스트 15명 전시 참여

그을음을 입힌 유리병에는 바늘로 그어 만든 불규칙한 무늬가 독특하다.

무엇이 이런 무늬를 그리는 것일까, 바늘의 반대편으로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희무끄레한 ‘홍합살’과 마주치게 된다.

전기장치에 매달린 이 홍합살은 이따금 주어지는 자극에 따라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유리병에 그림을 그린다. 인간은 홍합살이 죽지 않도록 가끔 물을 주며, 계속해서 ‘일’을 시킨다는게 작품의 콘셉트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과학자인 스펠라 페트릭의 ‘비참한 기계’다. 

스펠라 페트릭, 비참한 기계, 2015, 홍합, 램프, 기계장치, 비디오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인간이 과연 인간이 아닌 ‘다른 살아있는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착취하는 게 기술적, 환경적,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 ‘인간이 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안도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이미 우리는 극도로 고도화된 사회시스템아래서 저 ‘홍합살’처럼 죽을 때까지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러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 ‘끔찍한’ 작품은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가 20일부터 개막한 기획전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에 출품됐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기술 환경과 인간 존재의 관계성을 부여하고 미래적 시각을 제시했던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 관점에서 현대 기술과 예술을 탐문하는 전시를 꾸렸다.

전시에는 김태연, 노진아, 다이애나 밴드, !미디엔그룹 비트닉, 박경근, 배인숙, 백남준, 손종준, 스펠라 페트릭, 양쩐쭝, 언노운 필드, 언메이크 랩, 자크 블라스&제미마 와이먼, 프로토룸, 황주선 등 총 15명(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설정을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본다. 

자크 블라스 & 제미마 와이먼, 나는 여기서 공부하는 중 :)))))), 2017, 4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27:45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자크 블라스 & 제미마 와이먼은 ‘나는 여기서 공부하는 중:))))))’이라는 작품에서 마이크로 소프트가 2016년 공개 하루만에 해고시킨 인공지능 ‘테이’를 부활시켰다.

테이는 19세 미국 여성으로 디자인됐지만,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에서 불과 몇 시간만에 대량학살, 동성애 포비아, 남성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나치즘 등을 배워 바로 폐기된 시스템이다. 죽었다 살아난 테이는 일그러진 얼굴로 ‘인간인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거 아니냐’며 원망섞인 독백을 내뱉는다. 

박경근, 1.6초, 2016, 2채널 비디오&오디오 설치, 컬러, 유성, CH1 16:56. CH2 12:26, Audio 33:31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박경근은 ‘1.6초’라는 영상물을 통해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로봇 생산시간을 1.6초 단축하는데 벌어진 노사간 갈등을 조명한다. 1.6초 빨라진 로봇을 따라잡기 위해 인간이 치러야할 노력과 희생은 고통스러운 수준이다.

결국 인간은 기계의 절대자도, 주인도, 스승도 아니다. 인간이 창조한 기계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시스템’으로, 그와의 관계설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며 그 가능성도 무한대다.

노진아 작가의 인터렉티브 조각작품 ‘진화하는 신, 가이아’는 이같은 관계설정이 이제 시작임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인간 형상을 닮은 사이보그 조각은 “너는 왜 인간이 되려고 하니?”라는 질문에 “인간과 기계는 근원은 다르지만 언젠가는 같아질거야. 인간이 기계의 씨앗을 온 몸 곳곳에 들이고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심지어 이제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기술적’으로 흐려지고 있다. 김태연 작가는 자신의 DNA를 이식한 식물을 선보인다.

인류 역사가 ‘DNA를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서 시작됐다고 본다면, 이 기술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것이다. 지금은 풀에 DNA를 심지만 가까운 미래엔 자신의 DNA를 담은 ‘자식’같은 로봇이 탄생할지 모르는 일이다.

전시 제목의 ‘사이버네틱스’는 미국 수학자 노버트 위너에 의해 탄생한 용어로, 피드백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제어하고 통제한다는 관점에서 생명체와 기계를 동일하게 보는 이론이다.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기계도 주체, 인간도 주체”라며 “이번 전시는 기계의 발달로 인간의 미래가 암울해지는 ‘디스토피아’로 규정하는 건 아니다”고 했다.

전시를 기획한 구정화 큐레이터도 “단순히 로봇을 대상화하고 일을 시키고 마음껏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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