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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99세 이하는
방학이 되어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찾아든 곳이 청송의 객주문학관이다. 사과의 고장답게 과수원마다 풋사과들이 여름 태양빛을 받으며 굵어가고, 한가득 연꽃이 피어난 큰 연못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 더없이 조용한 곳이다. 문학관을 둘러보다가 작가 전시실 3층 입구에서 다음 글귀를 만났다.

“1939년 12월 7일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완전히 외톨이였다. 대구농림고등학교 축산과를 다녔지만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이 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지금 굶은 것도 성에 안 차냐’며 온종일 울었다.”

『객주』의 작가 김주영 선생을 소개한 글이다. 밥을 굶는 작가가 될까 봐 어머니를 울렸던 아들은 도리어 다른 작가들에게 창작공간과 ‘밥’을 제공하는 대작가가 되었다. 밥을 굶는 작가에서 밥을 베푸는 작가로의 여정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는 굶는 두려움보다 더 강한 것에 이끌려 있었다. 그는 “학교가 파하면 배를 쫄쫄 굶은 채 버스 정류장에 앉아 낯선 이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어디로 가는 걸까’ ‘버스가 가는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어머니가 장터에서 국밥을 파는 동안 외로운 꼬마는 사람들이 늘 붐비는 버스 정류장 구석에 주저앉아 낯선 도시를 꿈꾸었다. 친구들이 사용하지 않는 흰색 크레용을 빌려서 그림을 그릴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가보고 싶은 수많은 길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녔다. 비장한 각오로 당시 서라벌예대 교수였던 박목월 시인에게 시 열 편을 읽어봐 달라고 요청했다. 박 시인은 ‘자네는 운문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했고, 더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던 김주영은 고향으로 내려가 자원입대했다. 이 사건은 이후 그가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된다.”

한편, 필자는 객주문학관 창작관에 입주 작가로서 여름동안 둥지를 틀게 되었다. 작가들 사이에 글쓰기 좋은 곳이라 입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작가들의 방마다 ‘도둑에게서 배울 점’이라는 제목의 글이 붙어 있다. 김주영 작가의 명문장들이 붙어있지 않을까 예상했다가 맞닥뜨린 그 글귀 앞에서 처음에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둑에게 배워야할 그 첫 번째가 “밤늦도록까지 일한다”이고, 마지막 일곱 번째가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잘 안다”이다. 책상 앞에서 글을 쓰다가 게으름을 피우려고 고개를 돌리면, 음, 벽의 ‘도둑’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다.

여름동안 작품 구상을 끝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학생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뼈아픈 조언을 잘 받아들여 제 갈 길을 제대로 찾아간 작가의 결단력과, 장터에서 떠돌면서 배고파하던 꼬마였기에 배를 채우기 위해 항상 길을 떠나야했던 보부상의 삶을 이해했고 『객주』라는 대작을 쓸 수 있었다고, 열약한 환경을 자신만의 비옥한 토양으로 바꾸어놓는 자가 어떤 분야에서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음을 일깨워줄 것이다. 도둑과 작가의 공통점이나, 작가들이 글을 쓰다가 내려와서 밥을 먹는 식당에는 ‘금연’을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고 말해줄 것이다. “99세 이하는 금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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