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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귀농·귀촌 50만시대와 ‘농약 테러(?)’
2010년 가을 가족과 함께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한 P씨(54)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농촌에 들어온 지 만 7년차인 그가 새로 맞닥뜨린 고민의 실체는 다름 아닌 농약. P씨는 밭(약 0.5ha)에서 친환경 유기농과 자연재배 방식으로 각종 작물을 키우고 있다.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농약이 문제가 된 것은 이웃 때문이다. P씨 집과 접한 이웃의 사과밭에서 올 4~6월에만 벌써 6차례 농약이 뿌려졌다. 제초제까지 더하면 7회가 넘는다. P씨 집은 이웃 사과밭 경계에서 고작 10여m 떨어져있다.

최근 들어 P씨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다. 이웃 사과밭에서 아예 트랙터에 장착한 기계로 농약을 무차별 살포하기 때문. 여러 분출구에서 한꺼번에 세차게 뿜어져 나온 농약은 4~5m 높이의 사과나무를 훌쩍 넘어 무려 10~15m까지 공중으로 치솟는다. 당연히 P씨의 집과 일부 농작물은 ‘농약샤워’을 피할 수 없다. 이쯤 되면 ‘농약테러(?)’다.

이 마을에서 무차별 농약살포로 인한 피해자는 비단 P씨만이 아니다. P씨 집과 접한 사과밭 농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집이 두 채나 더 있다. 마을 안 초등학교 뒤편의 또 다른 사과밭 주변에 들어선 작은 절과 집, 학교 관사 등 여러 채도 농약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농약을 대거 살포하는 사과밭이 마을 안과 학교 옆을 가리지 않고 마구 조성된 데는 홍천군의 책임이 크다. 홍천군은 사과를 지역 주력작목으로 육성키로 하고, 몇 년 전부터 대대적인 보조금 지원 사업을 펼쳤다. 땅을 제외한 사과밭 조성비용의 최고 70%(개별 농가 자부담 30%)까지 지원했다. 이렇다보니 너도나도 사과밭 조성에 뛰어들었다.

P씨는 “국민 세금인 보조금을 투입하는 사업인데도 주변 인가피해와 환경문제에 대한 면밀한 고려와 대책 없이 오로지 사과 재배면적 확대에만 매달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민선6기 홍천군이 내건 ‘꿈에 그린 전원도시-귀농·귀촌 특구 홍천’이란 군정 캐치 프레이즈가 무색하다”고 꼬집었다.

무차별 농약 살포로 인한 갈등과 피해 사례는 비단 홍천 뿐 만이 아니다. 사실 농촌 지역 어디서나 툭하면 터지는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농약관련 법과 제도에는 무차별 농약 살포로 인한 주변의 피해와 갈등을 막기 위한 관련 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주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귀농·귀촌인은 귀농 2만559명, 귀촌 47만5489명(약 96%) 등 총 49만6048명에 달했다. 사실상 ‘귀농·귀촌 50만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들 상당수는 인생2막 농촌에서 느림과 여유, 힐링 등 자연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앞으로 무차별 농약 살포에 따른 민원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정부와 농촌 지자체는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농약 살포 전에 미리 스마트폰 문자를 통해 이웃에 알려주는 ‘농약살포예고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농약을 많이 치는 사과, 인삼 등 일부 작목의 경우 학교 주변과 마을 안에서의 재배 등은 제한해야 한다. 보조금 지원사업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이미 조성된 사과밭 등은 주변 인가 피해가 없도록 농약 차단 펜스를 설치토록 의무화 하는 등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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