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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좌영길 사회섹션법조팀 기자]판사에게는 승진이 없다

판사에게는 승진이 없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판사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법원 혹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도 판사가 맡는 직책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법원장이 되고,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지명도 그들 중에서 이뤄진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승진 개념이, 대법원장의 ’피라미드식‘ 인사권 행사로 인해 생겨난다.

판사에게 승진이 없는 이유는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판사는 상사의 지시에 따르는 일반 공무원처럼 일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가 ‘관료화’되면 대법원이 만들어놓은 선례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지고, 그만큼 소수자 보호라는 사명도 요원해진다. 전국의 판사 3000여 명을 좌우하는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바람직하게 행사되고 있는가에 대한 우려는 합리적이다.

실제 ‘사법부 관료화’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일선 재판부는 인사를 앞두고 밀려있는 수 많은 사건을 처리하기 바쁘다. 단 기간에 많은 사건을 처리하되, 가급적 선례를 따르는 게 안전하다. 민사사건이라면 판결이 아닌 양 당사자의 합의로 끝내는 조정도 신경써야 한다. 대법원이 조정 성립률을 높이는 걸 바라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변호사들이 조정을 강요당하는 문화에 불만을 토로한다. 대법원장이 바뀌면 재판을 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소수 정예 판사들이 일하는 법원행정처에서 ‘하달’하는 지침대로 법정이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내려온 지침대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사건을 무난하게 처리하는 판사가 능력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튀는 판결’로 인해 사법부가 공격당할 빌미를 주지 말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사법부 관료화 방지를 위해 폐지하기로 돼 있던 고등부장 승진제도 기약없이 유예됐고, 대법관 지명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열에 따라 지극히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이뤄졌다.

일주일 전, 전국 판사 100명이 모여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사태는 대법원이 한 연구단체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일선 판사들을 상대로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가 바람직하게 행사되고 있는지 설문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전국 판사 대표들은 사법행정권이 부당하게 행사됐다는 의혹에 대해 양 대법원장이 직접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제 양 대법원장이 답할 차례다. 이 대답은 ‘과연 어떤 판사가 훌륭한 판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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