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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소 고문서 연구실장 ①] 주요 古문서 10만점 발굴…문서계‘인디애나 존스
’가보·옛문서 맡기려는 어르신들 집 앞 장사진…일일히 설명해주고 보존 위해 동분서주…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소 고문서 연구실장

“저는 전화신용불량자에요.”

10여 분간 사진촬영을 하면서 그가 쏟아놓는 다채로운 비유에 웃음이 절로 터진 뒤였다. ‘이번엔 또 뭐지?’ 하는 표정에 그가 말을 이었다.

“전화를 받으면 한 시간은 후딱이죠. 대여섯 시간은 일을 할 수 없어요.”

전화빚을 많이 졌다는 얘기다. 그의 전화기는 대체로 통화중이거나 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다. 인터뷰 중, 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동 모 마을 종가댁이라고 했다. 그 뿐이 아니다. 문 앞엔 누군가 서성대고 있었다. 그는 잠시 기다려주십사, 말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문 앞엔 ‘할배들’이 줄을 선다. 그들의 손엔 수백년된 묵직한 보따리가 들려있게 마련이다.

고문서실 테이블 위에는 막 보따리에서 나온 고문헌들이 놓여 있다. 표지가 찢기고 변색돼 형태마저 온전치 못한 것들, 아예 내용들이 찢겨나가 너덜너덜한 상태의 것들이 뭉텅이씩 쌓여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래야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글씨…. 고문서실의 연구원들은 이들을 정성스레 펴고 다듬어 온전하게 만들어낸다. 한국학 연구자와 일반인들이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는 첫 작업이다. 정 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전국 600여 종가를 들락거리며 귀중 문서를 발굴해온 ‘문서계 인디애나 존스’, 안승준(58)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 얘기다.

지난 6월17일 경기도 분당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실에서 만난 안 실장은 몹시 들뜬 모습이었다. 얼굴은 상기됐고 경상도 목소리의 억양이 높았다. 그의 손엔 얇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한명회에 의해 왕위계승에서 밀려난 세조의 장손 월산대군파의 대종손 집에서 나온 문서였다.

“선조 중에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훌륭한 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보따리를 들고 오셨어요. 제가 그 문서 보따리 속에서 그분이 얘기한 걸 1분만에 찾아냈죠.”

그가 들고 있던 종이가 바로 그 문서였다. 초서로 써내려간 네 줄 문장은 내달렸다.

을사년(1905년) 8월24일, 의병을 모으고 훈련시키는 창의소의 대장이 제천 동장격에 해당하는 이에게 보내는 전령으로, 그곳 의병 향약조직대장인 이 집강(執綱 )에게 큰 전투를 위해 총 한자루를 속히 보내라는 내용이다. 당시 전령은 일본에 들키지 않도록 곧 바로 폐기되곤 했다. 보내는 이, 받는 이, 이름 명기도 피했다.

이 집강은 일본이 쏜 총에 맞아 죽었고, 쓰러진 자리, 밭골이 그의 무덤이 됐다. 시신을 거두지 않고 거기에 봉분을 세운 것이다. 남의 밭에 만들어진 묘를 밭주인은 가져가라 하지 않았다. 여태 관리를 해주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아내 역시 남편 못지 않게 훌륭했다. 부인은 남편이 죽자 전 재산을 종들과 이웃에 나눠주고 자신은 홀홀 단신 그곳을 떠났다.

“문서 몇 쪽을 노인에게 읽어주니 엉엉 우셔요. 문서 내용 때문이 아니에요. 대여섯살 때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희미한 기억이 나는 거죠. 그 얘기를 저한테서 다시 듣게 된 겁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살아온 시간을 떠올리며 우시는 거죠.”

고문서는 집안의 가보격이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한문으로, 그것도 초서로 된 글을 한 마디도 읽어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건 그저 종이 뭉치일 뿐이다. 수백년 내려오면서 보존 상태도 엉망인 게 많다. 좀이 슬고 글자를 판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색이 되거나 문서의 모서리가 찢겨나간 게 대부분이다. 디지털 세대인 후손들에게는 더 짐이 될 뿐이다.

그래서 안 실장에 따르면, 노인들이 저 세상으로 가기 전, 고문서를 기탁하러 온다는 것이다. 온전히 보존되는 상태를 확인하고 나면 몇 년 뒤 할배들의 소식이 끊긴다.

“저는 노인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문서를 보관하는 게 다가 아니고 자손들을 꼭 다시 데려오십시오라고요. 문서에 쓰인 내용을 읽어주고 의미있는 내용을 전수해 주는게 가장 중요한 보존의 방법이에요.”

가보를 기탁받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집안의 역사와 문헌을 후손이 아닌 국가기관에 맡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 중엔 재산적 가치가 큰 것도 있다. 안 실장은 문서를 기탁하라고 쫒아다니며 설득하지 않는다. 노인들이 감동해 스스로 내놓도록 하는 그 만의 소통법이 있다.

“바로 정성이에요. 그 집안의 족보와 히스토리, 노인이 알 만한 것, 좋아하는 것을 밤새 연구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죠.”

노인들은 안 실장이 풀어놓는 조상 얘기에 흠뻑 빠지고 만다. 기탁은 거기서 시작된다.

오랜 세월 견뎌온 고문서의 보관상태는 심각하다. 상자 속에서 쥐를 만진 것만 댓 번이라고 안 실장은 말한다. 쥐, 벌레, 바이러스 등 수백년 된 게 상자속에 같이 들어있다. 그런 문서들은 응급처치가 우선이다. 빨리 데려와 더 이상 마모되지 않도록 처치하고 찢어진 것을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수술도 타이밍이 있잖아요.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건 보존팀으로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직업병을 피할 수 없다. 수많은 종이에 대한 알레르기 때문에 그의 등은 단 십센티도 성한 데가 없다. 그의 아내는 그의 등을 바로 보지 못한다. 연구실 여기저기 등 긁개가 놓여있다.

그래도 문서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종부들을 생각하면 그는 문서보관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탁하는 문서를 받기 위해 종갓집을 찾잖아요, 보따리를 실은 차에 종부들이 손을 대고 떼질 못해요.”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그 너머 아득한 세월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그것이 부담이기도 하지만 자부심이기도 했는데, 막상 떠나보내려니 손이 떼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문서를 꼭 다시 찾아가라고 말한다. 지역에 문서를 보관할 시설을 갖추게 되면 여기에 두지말고 가져가라는 것이다.

“돌려주기 위해서 받는 겁니다. 일본 지방에는 그런 시설과 인력이 돼 있어요.”

그는 수십년을 그렇게 전국의 집들을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새 문서를 만나면 흥분된다.

“매번 달라요, 어떤 집안, 살림살이가 다 다르죠. 새로운 사람을 매번 새롭게 만나는 거에요. 새로운 길이 인간 수 만큼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문서를 발굴하고 존재를 기록으로 남겨 이를 연구하고 조명하는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가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은 저인망식이다. 족보를 캐서 혼인과 당파, 학파, 혈연관계를 종합적으로 연구한 뒤 지역네트워크를 동원해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는 향토사학자 600여명과 15년간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있다. 그가 찾아낸 귀중 유일문서도 적지 않다.

안 실장은 순흥 안씨 상주파 종손가 출신이다. 업을 타고난 셈이다. 한문은 우리말 만큼이나 그에게 자연스러웠다. 대학시절, 대구향교를 찾았다. 그는 조선의 전통의식, 한문문화가 마냥 좋았다.

“조선시대 원어민들하고 같이 생활한 거죠. 노인들과 생활하고 대화하는게 자득이 됐죠. 대학생활 내내 거기서 생활하고 결혼식도 거기에서 올렸어요.”

아침 6시부터 8시30분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문을 배웠다. 눈이 오면 시를 쓰고 시를 써온 걸 같이 읽는 그런 게 좋았다. 그러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에 지원했다. 학비도 생활도 모든 게 공짜였다.

“면접을 보는게 어떤 식이냐면, ‘고려사’의 아무데나 툭 펴서 ‘이거 읽어봐’하는 식이죠. 정말 실력있는 사람이 뽑히는 거죠. ”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세운 곳에 박근혜 대통령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저는 모든 걸 공짜로 배우고 얻었으니 나라에 큰 빚을 졌어요. 그걸 공짜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죠.”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분주한 와중에도 한문과 약사문화 시민 무료강좌를 27년째 이어오고 있는 이유다.

그가 요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건 후계자를 기르는 일이다. 정년이 4년 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조상들이 남긴 것에 지극한 정성을 기진 사람을 찾아 바톤을 넘겨줘야 할 시점이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전국 인적 네트워크를 물려주고 고문을 줄줄 읽어낼 수 있는 ‘미친 사람’을 찾고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15년 정도 꾸준히 한문을 읽어야 초서를 신작로처럼 읽어낼 수 있다 한다.


그는 그 중 가장 중요한 자질로 옛날 어른들에 대한 정성을 꼽았다. 요즘 젊은 이들은 그런 점에서 많이 미흡하다. 문중 사람들이나 노인들이 찾아오면 부담스러워한다. 간절함 같은 게 부족한 것이다. 이제 전통의식을 지닌 마지막 세대가 사라지고 있어 그는 이런 점이 안타깝고 조급한 마음이다.

“소견머리가 안터지면 인력으로 안된다는 말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 4차혁명시대, 우주시대에 왜 고문서를 찾고 보존해야 할까?

“조상이 남긴 것들이 사장돼요. 내용이 모레나 재, 불모지로 변합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학, 사상을 공부하는 건, 대한민국의 본질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는 고문서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민생문서, 사람 살림살이 문서에요.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의 전략,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문서에 있습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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