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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주의자를 위한 전시 ‘미술관 동물원’
서울대미술관 ‘미술관 동물원’전
인간과 동물 관계 고찰
생태적 고민도 풀어내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한쪽 벽면을 길게 차지한 알록달록한 부조작품은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종류의 동물이다. 염소, 돼지, 닭, 병아리, 버려진 강아지, 로드 킬 당한 새 등 동물의 내장과 피부를 표현했다. 작가는 “동물을 먹으면서 나는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다. 이선환 작가의 ‘데드라인(Deadline)’이다.

동물원을 테마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대미술관은 올해 두 번 째 전시로 ‘미술관 동물원’전을 개최한다. ‘동물’을 만나러 ‘동물원’에 가는 것이 교육적 차원에서 필요한 행위로 인식되는 요즘 동물원에 얽힌 자본주의와 권력구조를 읽는 전시다. 전시에는 강민규, 김기대, 김상진, 노충현, 박승원, 박찬용, 손현욱, 엇모스트, 윤정미, 이동헌, 이선환, 이소영, 이해민선, 최민건 등 총 17명 작가의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50여점이 선보인다. 

이선환, 데드라인, 2014,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노충현, 연극이 끝난 후, 2015, 캔버스에 유채, 194×26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정영목 서울대미술관장은 “동물원하면 밝고 신나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잔인함과 권력 그리고 폭력이 깃든 장소”라며 “인간의 참혹한 민낯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때 인간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물원에 전시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 뼈아프다.

노충현 작가는 이같은 폭력성에 주목했다.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은 자신의 본성을 망각한 채, 인위적인 구조물에 갇혀 지낸다. 작가는 빈 동물원의 방을 그렸다. 사다리, 타이어, 그네, 훌라후프, 끈 등 동물들이 살아가는데 전혀 필요치 않은 소품이 화면의 주인공이다.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만 가득한 방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이토록 폭력적임을 드러낸다. 

박찬용, 우상, 2013, 합성수지 위에 양가죽, 280×98×140cm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그런가하면 박찬용 작가는 인간의 이기심을 꼬집는다. 높이 솟은 뿔이 멋진 들소, 숫양과 사자의 두상을 선보인다. 박제란 인간이 자신보다 힘이 센 동물을 제압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동물을 굳혀 전시하는 이 행위는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의 다른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니컬한 시선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동물원의 그들과 교감하려는 시도도 이어간다. 박승원 작가는 수 개월간 원숭이의 행동을 모방, 연습, 체득하고 원숭이와 소통을 시도한다. ‘시아람 1장’은 베를린 동물원의 침팬지 ‘릴리’와의 교감 기록이다. 작가는 늘 같은 시간에 침팬지를 방문하고, 그들처럼 손과 발을 이용해 걷는 등 행동을 모방한다. ‘침팬지 흉내를 내는 사람’은 일견 코믹한 부분이 있다.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순간 ‘릴리’가 대화의 몸짓을 건네는 데, 묘한 감동이 인다. 작가는 “개인적으로 소통에 대한 절박함이 극에 달했을 때 제작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박승원, 시아람 1장, 2008, 6분 15초, 싱글채널비디오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이동헌, Plastic Bag Dog, 2012, 레진에 우레탄도색, 45×85×35cm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인간과 동물과의 교감은 이제 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한다. 검은 비닐봉지에 거북이, 강아지를 합성한 이동헌 작가의 작품은 결국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분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하는 듯 하다.

전시 외 동물환경 다큐멘터리(매주 금요일 오후 3~5시)와 애니메이션도 상영한다. 양혜인 감독의 ‘오늘의 북극곰’, 에릭 오의 ‘Way Home(집으로 가는 길)’등이 상영작 리스트에 올랐다. 지하 2층 전시장에선 종이로 동물접기 등 체험활동도 가능하다. ‘문턱 낮은 미술관’을 표방하는 서울대미술관이 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동물원’이라는 주제를 꺼내들었지만, 결코 ‘어린이’에게만 적합한 전시는 아니다. 자녀를 둔 부모는 물론, 신념을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 이들이라면 꼭 가볼만한 전시다. 8월 13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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