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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미래 식탁을 풍요롭게 바꿀 아열대작물--정황근 농촌진흥청장
20여 년 전 동남아 출장 때 태국에서 처음 먹어본 과일 맛에 그만 반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두 손을 포갠 모양의 넓적하고 노란색 과일은 향긋한 향기와 함께 입안에서 슬슬 녹아 목구멍으로 저절로 넘어갔다. 1달러에 10개쯤이었던가. 알고 보니 바로 ‘파파야’였다. 그 귀한 과실이 지금은 제주도는 물론 전남 곡성에까지 상륙해서 우리의 식탁을 즐겁게 만든다.

파파야, 용과, 구아바, 람부탄, 잭푸르트, 패션푸르트 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아열대작물들이 근래 들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해외여행의 보편화로 예전에 비해 아열대과일을 자주 접해본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수요도 늘고 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에 대비해 새로운 소득 작물을 발굴하려는 정부의 노력과 일부 지자체의 특화작물 육성사업과 맞아 떨어지면서 아열대작물 재배 붐이 가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100년 우리나라 연평균기온은 세계 평균 0.75℃보다 2배 이상 높은 1.8℃나 올랐다. 평균기온의 상승은 기후변화에 민감한 과수의 재배지 지도를 바꾸게 했다. 제주 특산품이라 여겼던 한라봉은 충북 지역까지, 사과는 강원도 포천과 영월 지역으로 올라갔다. 작물재배지가 북상함에 따라 그 틈새를 자연스럽게 아열대 작물이 채워가고 있다. 이제는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의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가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아니고, 중부지방까지도 북상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소비자의 기호와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지금까지 총 50종의 아열대작물의 특성과 국내 환경적응성 평가, 그리고 재배기술을 개발해 왔다. 그 중에서 20종은 우리 농업환경에 맞는 재배기술을 확립하고 재배를 희망하는 농업인과 지자체에 보급할 예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재배되고 있는 아열대작물의 총면적은 361.6 ha로 과수 106.66 ha(생산량 1174t), 채소 255 ha로 추정된다. 특히 아열대과수 재배면적은 해마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아열대작물 중에서 맛은 물론 건강에도 좋고 시장성까지 갖춘 대표적인 작물을 꼽는다면, ‘올리브’와 ‘파파야’다. 

   올리브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재배하고 있지 않지만,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연구결과 제주도 및 남해안 일부지역의 노지에서도 월동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노지재배에 적합한 품종도 선별해 재배 기술을 확립하였다. 지중해 이쪽저쪽의 나라들이 재배하는 올리브는 그리스신화에 나올 정도로 재배역사가 오래됐다. 올리브를 주제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산ㆍ체험ㆍ관광ㆍ유통을 연계한 6차산업 작물로 손색이 없다. 

    제주도와 같은 위도에 있는 일본의 쇼도시마 섬은 올리브 섬으로 유명하다. 이미 100년 전부터 올리브를 도입해 재배에 성공했고, 지금은 가을철이 되면 수확체험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섬이 북적인다. 이러한 성공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 최대의 올리브 소비국이 됐다. 이에 힘입어 쇼도시마는 일본 6차산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파파야는 태국음식 중 하나인 ‘솜탐’의 주재료이다. 솜탐은 덜 익은 초록빛 그린파파야를 주재료로 만든 샐러드로 매운맛과 신맛,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다. 파파야에는 파파인(papain)이라는 효소가 있다. 이 성분은 고기 육질을 부드럽게 할 뿐만 아니라 미용효과와 항염ㆍ항암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에서는 가온 없는 일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가 가능하고, 봄에 심고 당해에 수확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아열대작물은 외래농산물이지만 우리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한식조리법을 활용하면 일품요리로 만들 수 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연구소에서 처음 열린 아열대 채소를 활용한 한식 요리 시연회에서는 전문 셰프들이 개발한 볶음, 샐러드, 디저트 등 24가지 요리를 선보였다. 다소 생소한 재료였지만 시식을 해 본 참가자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 땅에서 생산되는 아열대 과일과 채소 요리가 우리 식탁을 풍요롭게 장식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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