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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사치 부릴 날을 꿈꾸며
#.‘1808년 5월 3일’은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점령하고 양민들을 잔인하게 처영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이다. 하루 전날 발생한 봉기는 스페인 독립의 도화선이 된다. 2년 뒤 아르헨티나에선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된 5월 혁명이 일어났다. 1886년 5월 1일엔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시간 쟁취에 나섰고(5월 1일 근로자의 날), 1968년 같은 달 프랑스에선 드골 정부의 몰락을 가져온 5월 혁명이 있었다.

세계사에서 5월은 혁명과 변화의 시공간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한국사에서도 5월은 격변의 지점이다. 5ㆍ10 총선거(1948년)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의 첫 출발점이다. 5ㆍ16 군사정변(1961년)은 기나긴 군사독재의 터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1980년 5ㆍ16 민주화운동은 군사독재에 항거한 역사의 아픔이 간직된 공간이다. 1991년 5월 역시 비리와 공안 통치로 얼룩진 노태우 정권에 대한 항거의 공간이다.

5월은 공교롭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탄핵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달이기도 하다. 5월은 그렇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물고 물리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노천명의 시 ‘푸른 오월’) 가슴 속 밀려드는 외로움은 사치라는 생각마저 든다.

2017년 5월 10일 오전 8시 9분. 문재인 정부의 시작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대통령이 시민들과 셀카를 찍고, 카메라 앞에서 직접 인사를 발표하고, 일문일답을 한다. 여민관 집무실에는 원형테이블이 등장하고, ‘눈먼 돈’ 특수활동비로 충당되던 대통령의 생활비가 대통령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하루 아침에 달라진 대통령의 모습이지만 이게 정상이다. 그래서 5월 10일은 정상을 가장한 비정상의 시간이 마침표를 찍는 지점이다.

권력 앞에 무기력하던 대중도 달라졌다. SNS(소셜네트워크)라는 막강한 무기(?)도 가졌다. 익명의 가면만 쓴 참여도 아니다. 문자 메시지로 적극적인 의사 개진도 서슴지 않는다. 또 하나. 지난 30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87년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도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인신공격성 문자폭탄 같은 자정기능 없는 대중의 정치참여도 그 중 하나다. 비정상이 정상을 찾아가는 과도기에 응당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지나치면 생채기가 남는다. 성장ㆍ고용ㆍ복지의 골든트라이앵글이라는 지향점이 옳다고 해서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100% 옳다고 할 수도 없다. 단순히 기득권의 저항으로 치부하면 또 다른 생채기가 생긴다.

문 대통령은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라고 했다. 후보시절엔 ‘사회적 합의’도 강조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찬반이 엇갈리는 지점에서 ‘사회적 합의’는 중요한 등대가 될 수 있다. 경총 등 일각의 우려 목소리에 3단 콤보로 “반성부터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그래도 꿈꾼다. 독재와 항거가 교차하던 5월이 ‘사회적 합의’와 대연정으로 새 미래를 추동한 디딤돌의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그래서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사치를 부릴 수 있기를… hanim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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