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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만명 독자는 왜 침묵했나...‘개봉열독X’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취지가 재밌어서 구입했다”“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전 이대로 묵힐 거에요”

출판사 은행나무, 북스피어, 마음산책이 지난달 1일부터 진행한 제목과 저자를 가린 블라인드 책 이벤트 ‘개봉열독X시리즈’가 베일을 벗었다.
출판사들은 지난 16일 자정, 포장을 벗기고 표지를 공개했다. 책이 공개되기까지 한달 반동안 진행된 이벤트에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독자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주문한 책이 배송돼 책의 정체를 알게 됐지만 이벤트의 발설 금지에 동조해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개봉열독’이 아닌 ‘구봉(口封)열독’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은행나무X’, ‘북스피어X’, ‘마음산책X’로 표지를 가린 채 출간된 책은 각각 8000부, 7000부, 1만5000부가 판매됐다. 2만여명의 독자가 이 규칙을 스스로 지킨 것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독자들이 동참해준 데에 감동을 받았다”며, “송인서적 부도 등으로 우울한 상태에서 출판계 보릿고개를 즐거움으로 넘겼다”고 털어놨다.

‘개봉열독 X시리즈’는 세 출판사 대표들이 ‘떼거리 서점 유랑단’을 꾸려 세계 각지의 서점 순례를 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본의 ‘X문고’나 유럽의 ‘서프라이즈 노벨’(A Novel Surprise),‘블라인드 데이트 위드 어 북’(Blind Date with a Book) 등이 모델이다. 세 출판사는 의기투합해 지난달 1일부터 각각 ‘은행나무X’, ‘북스피어X’, ‘마음산책X’라는 이름으로 제목과 저자를 가리고 책을 포장해 판매했다. 모두 신간 소설이라는 점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평이 전부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은 독자의 철저한 동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SNS를 통해 산 책을 올리고 자랑하거나 댓글을 다는게 일상화된 독자들이 일제히 함구한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은행나무X’를 펴낸 담당자 백다흠씨는 성공의 요인으로 ‘누설하지 않는 재미’를 들었다. 말하기와 노출 대신 말하지 않기는 일종의 게임이 된다. 놀이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함께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연대도 한몫한다. 서로 룰을 깨지 않게 조심하고 경계한 것이다.

이벤트 초기에 서너명이 게임의 룰을 모르고 실수로 올렸다가 사과하고 3분만에 내린 일도 있다.

독자와의 소통이란 기획의 힘을 보여준 사례로 출판계 자극이 될 만하다.

블라인드 이벤트가 남긴 메시지는 또 있다.

책 소비의 관행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이번에 ‘은행나무X’의 책은 올해 데뷔한 작가 박유경의 장편소설 ‘여흥상사’였다. 평소대로라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을 지도 모를 책이다. 작품성이 뛰어난다 한들 베스트셀러 작가에만 관심을 둔 독자들의 눈에 띄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작품을 작품 자체로 봐야 한다는 반성이 그것이다.

이런 블라인트 이벤트에 부정적 시각도 있다.

책 제목과 표지 등도 책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독자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책 출판의 필요성이 확인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세 출판사는 독자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는 ‘개봉열독 시즌2’를 마음에 두고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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