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민원담당 공무원 우울증 자살…대법, “공무상재해 인정”
-공무와 자살 인과관계 부족하다는 원심 뒤집어
-대법, “업무부담 외 자살을 선택할 다른 이유 없다” 판단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민원인을 응대하는 부서에서 일하며 업무량이 많아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무원에게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는 국회사무처 청원담당 계장으로 일하다가 자살한 조모 씨의 유족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해 달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사진=대법원 전경]

대법원은 “망인은 과중한 업무와 그와 관련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 우울증이 재발되거나 악화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망인이 자살을 선택할 만한 다른 특별한 사유가 나타나지 않은 사정 등을 고려하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95년 국회 공무원으로 임용된 조 씨는 2012년부터 국회에 접수되는 청원이나 민원을 담당하는 청원담당 계장으로 일했다. 국회에 접수되는 청원, 진정, 민원 등은 2012년 무렵 연 6000건에 달했고, 이를 소관 부서에 전달하거나 상담하는 업무는 상당히 강도가 높았다. 특히 2013년부터 자살예방을 위한 전화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센터 개소 및 운영 준비를 맡아 업무는 더 늘었다. 예정된 상담센터 개소 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월 50시간 이상 추가근무는 물론 휴일근무도 했다.

조 씨의 증상은 이 맘 때 즈음부터 본격화했다.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고, 2013년 3월초부터는 허리와 엉덩이 통증, 만성 피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한 달 사이 체중이 8㎏이나 줄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불안, 초조, 어지러움 증세가 심각해지자 조 씨는 신경정신과 진료를 위해 2013년 4월25일부터 30일까지 병가를 냈다. 그리고 병가 기간이 끝난 다음날인 2013년 5월1일 새벽 출근을 앞두고 자택 베란다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1ㆍ2심은 조 씨의 사망이 공무원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 씨의 업무가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과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보단 조 씨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불안 증세에 시달렸고, 우울증 병력이 있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발생했고, 그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 내지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곧 공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된다”며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비록 과거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나 2012년 12월까지 꾸준히 치료 받으며 별다른 문제없이 근무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대법원은 “망인이 종전과 달리 민원인 응대가 포함된 청원담당 부서를 총괄하게 되면서 새로운 업무에 대한 긴장감과 민원인 응대에 대한 부담감으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생명사다리 상담센터 개소 및 운영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과중한 업무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 과정에서 건강상태가 악화되었으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그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크게 떨어져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jumpcu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