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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 미술관진흥법, 공부만 해도…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친척이 사립미술관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설립절차와 운영에 관해 자문받기를 원하니 시간을 내달라는 부탁전화였다.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에 서둘러 일정을 잡고 약속한 날짜에 예비미술관설립자를 만났다.

인사말이 오고간 후에 나는 그이에게 소장품 점수와 수집기준, 재정상태, 미술관 부지 위치 및 규모, 미술관에서 일한 경험, 자문해주는 전문가가 있는지 등 상담에 필요한 몇 가지 기본정보에 대해서 물었다. 질문에 바로 답변하기는 어렵다고 느꼈던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이는 뜻밖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미술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취미로 사 모은 작품이 대략 100여점에 이른데다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땅도 있고, 또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들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이의 태연스런 대답에 나는 세 번 놀랐다.

한 번은 미술관 설립과 운영에 대한 아마추어적 접근방식에서, 두 번째는 운영비 조달 등 재정적인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공적자금에 의존하겠다는 안이한 경영마인드에서, 끝으로 설립을 추진 중인데도 미술관 설립과 운영에 관한 교과서에 해당되는 미술관 진흥법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는 미술관의 정의, 등록요건과 취소, 관리와 운영, 평가인증, 직원들의 업무수행에 필요한 조항, 예비설립자가 지켜야 할 준수 사항 등이 상세하게 규정되어있다. 예를 들면 제 2조에는 ‘미술관이란 문화ㆍ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ㆍ조각ㆍ공예ㆍ건축ㆍ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관리ㆍ보존ㆍ조사ㆍ연구ㆍ전시ㆍ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

미술관자료란, 학문적ㆍ예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말한다’ 고 명시되어 있다. 미술관 진흥법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서는 설립은 물론 개관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도 공, 사립, 대학 예비설립자들이 미술관 진흥법을 도외시하고 등록 신청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학문적ㆍ예술적 가치가 없는 미술품들을 버젓이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미술관자료를 취득ㆍ알선ㆍ중개ㆍ관리할 수 없다는 윤리규정을 위반하는 일도 저지르기도 한다.

필자는 미술관의 무분별한 설립과 부실 운영, 등록 이후 관리소홀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 근본원인이 미술관 진흥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에 있다고 본다.

모르면 원칙으로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다. 미술관 진흥법을 공부하고 충실히 따르기만 해도 자격미달 미술관이 계속 생겨나는 현상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예비설립자, 관장, 미술관정책 담당공무원에게 미술관진흥법을 의무적으로 교육시키는 방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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