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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초빙교수] 공공분야 건설 생산시스템 이대로 좋은가
교량ㆍ터널 등 사회간접자본은 도급계약으로 생산되는데, 발주청이 용역회사를 통해 목적물을 설계하고 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해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계약의 당사자를 발주청, 설계자, 시공자로 구분해 각자의 권한과 의무를 계약문서에 명시하고 이에 따라 공사를 한다.

발주청은 시공자가 품질이나 안전을 소홀히 하지 못 하도록 사용재료나 공사 과정을 감독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1994년 성수대교붕괴사고를 계기로 ‘전면책임감리’를 도입해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는 발주청의 감독권한을 민간용역회사에게 위임하고 있다.

2014년 법 개정으로 ‘공사감독대행 건설사업관리’로 용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부실공사와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공공건설생산시스템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시공회사에 공사의 기획부터 설계ㆍ시공ㆍ감독까지 발주청의 권한을 모두 일임하는 ‘책임형사업관리(CM at Risk)’ 제도를 도입해 시범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일반 도급계약 당사자 간의 권한과 의무를 중심으로 개선점을 살피는 것도 시급하다.

일본은 여전히 발주청 소속 공사감독관이 공사와 관련된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필요시 민간 엔지니어를 포함한 공사감독보조요원을 둘 수 있는 것과 달리, 국제 표준인 ‘국제 컨설턴트ㆍ엔지니어 연맹(FIDIC)’의 계약약관은 엔지니어(감리)에게 계약관리, 공사감독, 비용지급증명 등 주요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외견상 국내 감리제도는 1994년 이후 일본식에서 국제 표준으로 변경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본의 민간 공사감독보조요원보다도 열악하다. 모든 공사의 진행 과정을 옆에 지켜 서서 감시하고 실제 사용된 재료의 수량을 확인하는 검측원(inspector)까지 충분히 배치해 감독하는 국제 표준과 달리 국내는 ‘건설관리업무대가기준’에 의해 투입인원이 제한된다. 이 인원으로는 발주청에 제출하는 행정서류를 제때 처리하기에도 버거워 공사 진행 과정을 일일이 지켜보기란 사실상 어려운 실정임에도 문제가 생기면 발주청을 대신해 책임진다.

또한 발주청이 행정벌 부과권한과 설계변경 등 각종 승인권한까지 갖고 있어, 발주청 절대 우위의 문화가 여전하다.

정부가 권한의 왜곡을 조장하고 있기도 한데, 국토교통부 지침서의 “상주기술자(감리)는 시공자가 발주청의 승인을 득해 초과근무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은 감리자의 권한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하나의 사례다. 오히려 감리자가 시공자의 초과공사가 적정한지 승인권한을 가져야 하고, 부당한 승인거부로 인해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시공자가 이의 제기를 통해 다투는 게 계약의 정신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법규 외에도 공사 중 사업계획 변경 등으로 공사지연과 비용증가 사례가 많은 현실과 입찰부터 품질ㆍ안전ㆍ비용ㆍ공기관리 등 생산과정 전반에 걸쳐 국내 관행과 선진국의 차이를 깊이 있게 살펴 개선했으면 한다. 이미 기반시설의 노후화가 시작돼 재원도 더더욱 부족하게 될 텐데, 새로운 시설공사나 기존 시설의 보수ㆍ보강도 부실하게 돼서는 안 된다. 뒷 세대에게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한 마이너스 유산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정부와 발주청 공무원들이 선진 시스템을 직접 보고 체화할 수 있도록 해외 현장체험 교육을 시키면 어떨까 싶다. 그래야 잘못된 용역업무의 책임을 민간 엔지니어에게만 전가해 형사 처벌하겠다는 올해 1월 법 개정안처럼 거센 반발만 사는 정책의 헛손질도 줄이고 참여자들과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선진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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