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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종된 시민의식에 독립 투사가 울고 있다
- 노숙인 거처활용에 불법 주정차 몸살
- 술병 일회용 컵 나뒹굴고 악취도 극심
-“시민의식 함양해야” 한 목소리 내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를 4일 앞뒀던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 당당히 서있는 강우규 의사 동상 주변은 쓰레기로 얼룩져 있었다. 담배 꽁초와 종이컵 등이 바람에 흩날렸다. 어디선가 악취마저 풍겨왔다. 바로 앞 지하철 1ㆍ4호선 서울역 2번 출구 앞에서는 노숙인들이 술판을 벌였다. 직장인 서동우(31) 씨는 “동상 일대가 쓰레기만 날리는 노숙인 천국이 되고 있다”며 “강우규 의사도 하늘에서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9월 2일 강우규 의사가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가 탄 마차에 폭탄을 던졌던 이곳 앞은 서 씨의 말처럼 사실상 슬럼가로 변하고 있었다.

서울 곳곳 독립 투사의 흔적들이 불법 주정차ㆍ쓰레기 무단투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형 밴이 일대를 점령하는 것은 물론, 술병과 일회용 컵이 널브러져 있는 등 상황은 참담했다.

[사진설명=서울 중구 서울역광장 앞 강우규 의사 동상. 종이컵과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비둘기만 있다. 주변은 ‘노숙인 천국’이다.]

이날 방문했던 중구 명동 일대 이회영ㆍ이시영 6형제 집터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눈에 띄는 것은 이회영 선생 흉상 앞에 떡하니 서있는 검은색 대형 밴이었다. 주변을 지나던 시민 김모(40) 씨는 “매번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불법주차되어 있다”며 “정말 중요한 인물 집 터라면 이렇게 관리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회영 선생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전재산을 팔고 만주로 건너간 독립 투사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을 만큼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흉상에는 누군가 먹다 남긴 술병 하나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사진설명=서울 중구 명동 일대 이회영ㆍ이시영 6형제 집터 앞에 검은색 대형 밴이 불법주차되어 있다. 이회영 선생 흉상 앞에는 술병이 놓여있다.]

이회영ㆍ이시영 6형제 집 터에서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이재명 의사 의거지‘ 표지석은 새똥을 뒤집어 쓴 상태였다.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의사가 친일파 이완용을 칼로 찌른 곳이었다. “나라 원수를 갚았으니 통쾌하다. 권련(담배)을 가져오라”고 외쳤던 이 장소에 시민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얼핏봐도 지저분해서다. 표지석에는 일회용 컵이 당당히 자리했다. 시민 오병민(76) 씨는 “시민의식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느냐”고 탄식했다.

행정당국도 관리에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27일 서울시와 자치구 등에 따르면 시내 역사문화자원 관리는 각 자치구마다 있는 ‘내고장 지킴이’가 주로 담당한다. 중구는 주민들로 이뤄진 28명 내고장 지킴이를 통해 한 달에 5~6회씩 서울역광장과 명동 등 관할구역 안 역사문화자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설명=서울 중구 명동 일대 이재명 의사 의거터에 일회용 컵이 놓여 있다.]

중구 관계자는 “28명이 관리한다고 해도 최소 70곳이 넘는 지역 역사문화자원을 매일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며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시민의식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봉석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관리보다는 교육과 홍보 같은 사전예방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표지석과 동상 외에 눈에 띄는 다른 구조물을 설치,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공간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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