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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정준모 미술평론가ㆍ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삼성 떠난 문화예술계는 지금 ‘시계제로’
봄이 제법 문턱에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황사에, 미세먼지에 눈이 아프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희뿌연 모래바람 속이다. 이런 시계제로의 원인은 대한민국 최고 최대의 문화예술분야 패트론이었던 삼성미술문화재단의 리움을 이끌어 온 홍라희 관장의 사임에 있다.

홍관장과 홍나영 총괄부관장의 사임은 일개 사립미술관의 일을 넘어 상징적인 사건이다. 당장 올해 기획된 전시가 취소됐다고 호들갑이지만 더 큰일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가 엄청나게 위축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김영란 법 때문에 문화예술계가 말라붙었는데 여기에 가장 큰 후원자였던 삼성이 물러앉는다면 문화예술계 전체가 험난한 재정적 위기를 맞을 것이다.

삼성은 매년 가장 많은 돈을 문화예술에 지원해왔다. 2015년에도 총 460억 원을 지원했다. 삼성의 지원은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골프여제 박세리의 뒤에, 마라톤의 이봉주나 탁구의 유승민 뒤에도 있었다. 유명악단의 초청이나 오페라 공연에도 삼성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이 그 뒤를 따랐다. 삼성의 후원은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문화예술계는 삼성의 후원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고 또 다른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고 후원과 협찬을 해 줄 것인가.

사실 민간의 문화예술활동에 기부하고 후원하고 협찬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그간 부진했던 것은 정부와 통치자들이 재벌의 손목을 비틀어 준 조세격의 기부금을 걷어 여력이 없었던 때문이다. 정경유착이라고 하지만 정권이, 통치자가 먼저 손을 내민 경우가 더 많았다. 대기업을 상대로 출연금을 모금해 세금으로 해야 할 공익사업을 안한 정권은 없다. 이는 비리이자 적폐이다. 하지만 통치행위라는 미명아래 강제모금은 당연시됐고 관행처럼 굳어져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 참여정부에서도 자행되었다. 또 다음 정권에서는 없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사실 법인세율을 올려야 한다지만 세율을 올리려면 정부가, 통치자가 이런 반 강제적 모금이나 기부를 근절하겠다는 선언과 약속을 우선해야 한다. 법인세에 기업이 부담하는 이런저런 준조세 성격의 돈을 포함하면 우리나라 실질법인세율은 얼마나 될까.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들의 이런 준조세 성격의 반 강제적인 모금행위를 중단하고 기업이 스스로 문화와 예술을 지원하고 사회공헌활동을 하도록 놔주어야 한다. 이런 준조세격의 금액이 문화예술계로 풀린다면 블랙리스트도 맥을 못 출 것이며, 감히 문화예술계를 어찌 해보려고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해 세제혜택을 확실하게 확대해 권장해야 할 것이다. 이제 문화예술도 자유민주주의 근간인 시장경제에 맡겨 준조세라는 문화예술계의 봄을 막는 담을 헐어내야만 한다. 입으로만 문화국가를 외치지 말고 말이다.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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