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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봄에, 화분이 두려운 이유는
“그녀는 개나 고양이보다 화분이 더 무서웠다. 개나 고양이는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흔들거나 갸르릉 소리를 냈다. 화가 나면 털을 곤두세우고 눈을 치떴다. 하지만 화분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화분이 머금은 흙 속에 어떤 모양의 뿌리들이 숨어 있는지, 그 뿌리와 흙 사이에 어떤 생명체를 품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엉켜 있을 수도. (…) 그것이 속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한없이 아름답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한 화분은 그래서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이는 2017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양정규 씨의 ‘화분’이라는 단편소설의 첫 부분이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 소설들에는 아픈 주인공들이 적지 않게 등장해, 막 등단한 작가들이 우리 사회가 불안증에 휩싸여 있다고 여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화분’의 주인공도 뚜렷한 병명도 알 수 없이 하루에도 여러 군데 병원을 돌아다니는데, 특히 화분을 두려워한다.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라, 화분을 지극한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고 있다. 이는, 다가오는 존재가 나에게 복종할 개인지 아니면 나를 해칠 늑대인지 알 수 없어서 느끼는 흔한 두려움을 넘어서고 있는 듯했다.

화분이라도 일단 두려워하면 두려움은 끝없이 증폭된다. 내면의 무서운 환상이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은, 어느 날 아파트 현관을 나서다가 머리 위에서 화분 하나가 떨어져 눈앞에서 박살나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화분은 계속 흉기처럼 따라다닌다. 그녀는 아파트의 모든 창문들이 열리고 화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환영을 본다. 깨진 화분 속의 지렁이들이 눈도 코도 더듬이도 없이 꿈틀거리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래, 우리는 저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화분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단지 두려움으로만 인식하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강렬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은 인간이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소설에서는 어린 시절의 불운한 기억 때문에 주인공이 화분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필자는 하필이면 화분을 두려워하는 인물 덕분에 조금 다른 방향의 사색을 하게 되었다. 혹여 우리 속에, 꽃처럼 아름다운 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두려움 속에 미래의 싹이 들어 있는 것이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화분처럼 말이다. 봄이 되면, 나무나 식물의 여린 싹이 그토록 질긴 나무껍질을 뚫거나 단단한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올 만큼 큰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어쩌면 두려움은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하는 전초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 새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새로 등단한 작가들이, 새 대통령을 맞을 우리가 때로 불안하고 두려운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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