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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우생순, 삿포로판 '빙판의 기적'
피아노전공자, 의대생 링크로
중국팀에 공식경기 사상 첫승
여자 아이스하키팀 눈물 범벅

‘주역’ 신소정, 박종아 맹활약
일신 우일신 성장, 더 큰 목표
“우리생애 최고순간은 다음에”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23일 삿포로 아이스하키 링크에서 한국의 피아노 전공자, 의대 대학원생, 쇼트트랙 경력자 등이 뒤엉켜 울었다.

불모의 땅을 개척하면서 꿈을 만들어가던 그들은 바로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었다.

빙판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아이스하키와는 인연이 가깝지 않았던 그들이 자의반 타의반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뒤 와신상담(臥薪嘗膽), 권토중래(捲土重來) 끝에 일궈낸 중국전 공식대회 첫 승 7전8기의 순간이었다.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여자아이스하키 중국전에서 승리한 한국대표팀이 서로 엉켜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미 메달 꿈은 가물가물해졌지만 박종아의 슛아웃 결승골이 터진 때는 빙판의 ’우생순‘에 버금가는 감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생순(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말을 아낀다. 일신 우일신 하는 이들에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18년이 될지 2021년이 될지, 2022년이 될지 아직 모른다. 급성장세인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그때 가서 ‘우생순’하기로 했다.

전국에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단 하나이다. 바로 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하나이다.

한국팀(세계23위)은 이번 동계아시안게임 태국전에서 20대0으로 이겼다. 이 스코어는 2007년 창춘 아시아경기에서 중국(세계16위)에게 진 스코어와 같다. 앞서 1999년 강원동계아시안게임때엔 1 - 15 패,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선 1 - 30 패였다.

출발은 미약했으나 아직도 성장기인 한국팀이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선 중국에 0-10으로 졌다. 실점이 절반으로 줄었다. 중국전 실점을 한자릿 수로 줄인 기억을 마지막으로 삿포로로 건너간 한국팀은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3대0으로 이기며 이변을 강하게 예감한다.

23일 경기에서 양팀은 3피리어드까지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각 팀 3명씩으로 3분간 맞서는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경기는 축구의 승부차기에 해당하는 슛 아웃으로 이어졌다. 처음 3명의 선수가 나선 슛 아웃에서도 1 대 1로 비겼다. 이후 서든데스로 치러진다.

중국선수의 슛아웃을 방어하고 있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대표팀 골리 신소정(27ㆍ뉴욕 리베터스). [사진제공=연합뉴스]

과거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 출전, 30골을 먹었던 골리 신소정(27ㆍ뉴욕 리베터스)은 4~10번째 슛아웃에서 중국 슈팅을 모두 막아내며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그는 현재 북미리그 스타 골리 중 한명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창단된 것은 1998년이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국내 유일의 여자 아이스하키팀이다.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 유치 당시 ‘개최국은 전 종목에 참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급조됐다.

17명으로 구성된 창단멤버들은 당시 주장 신소자를 비롯해 국제대회에서 금빛 사냥을 하지 못한 쇼트트랙 혹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들로 구성됐다. 대회가 끝난 뒤엔 해체 수순을 밟았다.

1년 10개월 뒤 다시 꾸려진다.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제 다시 해체될 지 모를 팀에는 주부, 직장인, 중ㆍ고ㆍ대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낮엔 간호조무사, 밤엔 아이스하키 연습을 하던 새터민 황보영선수도 함께했다. 황보영은 현재 2018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홍보대사이다.

아오모리에서의 총 실점은 80점이었다. 다만 주장 이경선 선수가 국제 대회 사상 첫 골을 기록했다. 김경선은 1988~1997년 롤러선수였고, 2000년 클럽팀 아이스버그에 가입했다가,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재창단의 주역 신승한 감독의 눈에 띄어 대표팀에 발탁됐다.

이번 대표팀의 한수진은 피아노 전공자이고, 박은정은 의대 대학원생이다. 고혜인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은 확연히 다르다. 피나는 노력을 보인 한수진, 박은정, 고혜인 등의 급성장도 그렇거니와, 이미 북미 톱클래스에 오른 신소정과 아이스하키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캐나다 아이스하키 유학까지 떠난 박종아 등 ‘전문’ 선수들이 조화롭게 팀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삿포로 이전까지 국제대회 4득점 242실점이었다가 이번대회 23득점 6실점으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보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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