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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기업인의 자존감
“우리 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1995년 4월 중국을 방문 중이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직격 발언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미움을 샀지만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정치는 어떠한가. 김영삼 정부 보다 시계 바늘이 10~20년 역주행한 느낌이다. 아웅산 테러 희생자 유가족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인의 팔을 비튼 일해재단(전두환 정권), 대한구국선교단 완장을 찬 최태민의 호가호위(박정희 정권)는 작금의 최순실 게이트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이 정권은 한술 더 떠 대통령이 헌법질서 유린의 직접 당사자로 전락했다. 반면 지금의 기업은 어떠한가. 세계 최대 브랜드 평가 컨설팅기업 인터브랜드가 지난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5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100대 브랜드 가운데 7위를 차지했다. 2000년 52억달러(43위)와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성장했다.

전 세계에서 자체 기술로 자동차를 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7개뿐이다. 브랜드별 판매량으로 보면 도요타(일본), 폭스바겐(독일), GM(미국), 르노-닛산(프랑스), 현대·기아차(한국) 순위로 현대차는 5위에 올라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세계 주요 55개 품목의 시장 점유율(2015년 기준)을 조사한 결과 한국기업 제품 8개가 1위에 올랐다. 미국(18개), 일본(11개)에 이어 중국과 함께 3위다.

어느 잣대로 보나 우리 정치는 기업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기업인을 대할 때 기본적 예의는 고사하고 거의 능멸하는 수준이다.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대한민국의간판 기업인들을 ‘초딩’ 다루듯 했다. 한 의원은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손을 안든 사람은 ‘나쁜 어린이’가 돼야 했다. 이게 어디 거수로 결정할 사안인가. 민간단체 존속여부를 정치권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도 우습다.

정치인들이 총수들에게 약속하라며 다그쳤던 ‘정경유착 단절’도 순서가 한 참 잘못됐다. 전두환 정권 때 밑보였던 국제그룹이 해체되는 정치적 후진성이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청산되지 않은 마당에 어느 기업인들 권력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력이 자의적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다.

기업이 4류 정치에 능멸당하지 않으려면 실력과 함께 할말은 하는 결연함이 있어야 한다. 故 정주영 현대 회장은 정경유착이라는 소리가 듣기싫어 해외에서 돈 벌어 실력을 입증하려고 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故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릴 정도로 자존감이 높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촌철살인성 멘트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때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다. “한국은 행동은 없고 말만 많은 나토(NATO·No Action Talks Only) 국가”라고 정부를 힐난했다. 노동계에 대해서는 “떼로 몰려와서 떼만 쓰는 떼법”, 정치권은 “갈등 조정 능력을 잃은 3류”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지금 재계는 모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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