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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인간은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국가는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구성한 계약이다. 주권은 ‘일반의지’이기 때문에 결코 양도될 수 없다’는 현대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논의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 문구는 27년 뒤 프랑스혁명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됐다.

25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6년 한국사회는 이 먼지 묻은 문구를 소환하고 있다.

봉건시대에도 볼 수 없는, 봐서는 안되는 일들이 봇물 터지고 있다. 상상 이상이다. 매일 매일이 막장소설이고 막장드라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팔선녀, 호스트바 등등… “내가 그동안 낸게 세금이 아니라 복채였네”라는 말이 최고의 댓글에 오르고, “정치는 배신…경제는 등신…외교는 망신…연설은 순실접신”이라는 벽보가 나붙는다. ‘하야’라는 어려운 한자어가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오고, 교실에서 시험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중ㆍ고등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외신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샤머니즘’(shamanism)과 ‘사이비 종교집단’(cult) 두 단어면 족하다.

이게 한국의 오늘이다. 수습하려 하면 할수록 막장이다. 오히려 화(禍)를 부채질한다. 1분40초 476자의 대통령의 사과는 안하느니 못하다.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교체, 문고리 3인방의 경질(?)은 때를 지났다. ‘여론 간보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순실씨의 귀국까지 한꺼번에 일사천리(?)로 이뤄지면서 “뭔가 거대한 회로가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이다. 먹고 살기 위한 치열한 삶과 일말의 희망을 꿈꾸는 공간이 막장이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어렴풋 남아있는 막장을 희망의 공간으로 재소환하기 위해선 갈데까지 간 현실을 ‘리셋(reset)’해야 한다.

리셋의 첫 출발점은 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대통령은 형사소추의 대상이 아니다”(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 “다수설에 따라 대통령은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김현웅 법무부 장관)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검찰은 닉슨 게이트의 분수령이 됐던 ‘토요일 밤의 대학살’ 당시 “콕스를 임명하면서 의회에 ‘특별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약속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라며 사표를 던진 법무장관 엘리엇 리처드슨의 말을 더음어야 한다.

검찰이 그러지 못하면 대통령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법 앞에 서야 한다.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억측은 진실이 되고, 또 다른 악(惡)을 낳는다. 믿기지 못할 현실에 무기력을 호소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그런 국민들에게 막장은 희망이 아니고 절망이 된다.

계약은 신의가 지켜졌을 때만 성립된다. 루소는 믿음이 무너진 계약에 적극적인 저항을 주문한다. 루소가 직접민주제를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과 대통령이 이미 깨진 계약을 부여잡으려 하고, ‘정치공학적 계산’을 하려 하면 국민들은 양도되지 않은 마지막 주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는 문구가 한반도에 유령처럼 떠 돌 것이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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