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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民에 대한 官의 ‘갑질’ 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교묘해졌을 뿐…
공무원 사회는 여전히 官尊民卑
터무니없는 식사·술자리·선물 요구
과거보다 횟수·규모 많이 줄어들었지만
반말·막말…증거 안남는 ‘정신적 갑질’
“선물하려면 내 취미생활에 맞는 걸로…”
은밀하고 치밀하게 향응 요구 여전
일부선 공무원사회 자정 움직임도



 ‘갑(甲)질’이라고 말해 버린다. ‘갑’들의 어떤 ‘짓거리’라, ‘갑질’이다.

공무원 사회가 많이 투명해지고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공무원은 갑질을 할 수 있는 절대 위치에 있다. 이렇다 보니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갑질보다야 그 횟수나 규모가 줄었고, 수위도 낮아졌다. 일반 기업에서 대관(對官)업무를 보는 이들이나 공무원들과 대면해 예산을 따내거나 용역을 받는 이들은 입을 모아 공무원들의 갑질 수위가 낮아졌다고 말한다.

일례로 과거와 같이 향응을 요구하거나 각종 터무니없는 식사나 술자리 요구, 출장을 빙자한 해외여행 요구, 선물이나 부서 회식비 요구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찌 됐든 갑은 갑이다. 갑질,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교묘해질 뿐이다.

▶갑질이 사라졌다고 하는데=“갑질이 사라졌다고들 말하는데요?”라고 물으니 사정기관 관계자는 박장대소한다. “사라졌다고요? 누가 그래요?” 이 관계자는 “공무원이 갑질을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렇게 하면 대부분 내부 감사나 감사원 감사에 걸리게 돼 있지요. 그러니 당연히 아무도 모르게 갑질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세종시로 이주한 정부 중앙부처의 중간관리자급 공무원 A 씨는 경기도 과천청사 인근 식당에서 정기적으로 술을 마셨지만 단 한 번도 술값을 계산한 적이 없다. 계산은 A 씨가 근무하는 부처의 산하 공기업에서 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A 씨는 결국 내부 감사에 단속돼 좌천되고 말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 일하는 고위 간부인 B 씨는 부하직원 C 씨에게 “선물을 할 거면 취미생활에 필요한 색소폰 반주기가 어떨까” 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쉽게 말해 “색소폰 사서 내놔”라는 식이다. 또 B 씨는 밸런타인 21년산 3병과 30년산 1병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결국 B 씨는 감사원 감사에 적발됐다.

이렇게 부하직원은 물론 산하 공기업에 갑질을 하는 공무원들이 끊이지 않고 적발되고 있다. 내부 감사나 감사원 감사에 적발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 더 은밀하고 교묘하고 치밀하게 갑질이 수면 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관업무를 보는 일반 기업체 직원들은 공무원들의 갑질도 문제지만,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갑질이 하늘을 찌른다고 지적한다.

공무원들의 경우 갑질을 하다 적발되거나 소문이 날 경우 직업 자체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지만,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상황이 다르다. 각종 입법 관련 로비의 정중앙에 있다 보니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다.

이들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자리를 옮기는 상황이라, 할 수 있을 때 갑질이라는 갑질은 다 하고 떠나기 일쑤다.

한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 부장인 D 씨는 “대관업무의 상대가 정치인은 물론 정부부처 공무원이지만, 정착 대관의 핵심은 국회 보좌관들에게 집중돼 있다”며 “무엇보다 보좌관들이 각종 청탁은 물론 향응을 원하는 구태를 보이는 경우가 너무 잦다”고 말했다.

▶‘정신적 갑질’이라고 들어보셨나요=갑질의 종류는 다양하다. 상품권이나 각종 명목을 들이대며 현금을 요구하는 미친(?) 갑질은 증거가 남는다. 당연히 평생 공무원을 하기 위해 어려운 시험을 보고 들어온 이들은 이런 갑질을 대놓고 하는 게 쉽지 않다. 과거 선후배 공무원들이 증거가 남는 갑질을 하다 퇴출당하는 것을 본 공무원들은 갑의 위치에 있는 자신들의 갑질을 수정해왔다.

바로 ‘정신적 갑질’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기업에서 일하는 E 씨. 그는 공무원들과 일을 할 때면 미칠 지경이라고 말한다. “말을 놓고, 막말을 하거나 하대는 기본이죠. 정말 같이 반말하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지만, 참고 또 참죠. 저는 이런 것도 갑질이라고 생각해요. 금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갑질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지 못하고, 쌍욕은 아니더라도 인신공격성 말을 하는 것 자체도 갑질이라고 생각하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갑질=공무원들이 하는 갑질 중 대표적인 갑질이 바로 산하 공기업에 하는 갑질이다.

산하 공기업의 예산권은 물론 감사권, 인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공무원들은 산하 공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갑질을 한다. 실질적으로 정부 부처에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산하 공기업의 경우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대놓고 각종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부서 회식비를 강요하거나 개인적인 술값 등을 대납하게 하는 갑질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각종 업무를 볼 때 딴죽을 거는 공무원도 많다.

각 정부부처 산하 공기업 직원들의 경우 공무원들의 갑질에 행여 불만을 토로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면 바로 윗선에서 압력이 행사된다고 말한다.

한 정부부처 공기업 F 부장은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을 때보다 공무원들의 갑질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부 과거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공기업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허연회 기자/okidok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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