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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지하에 파묻힌 가짜석유 찾아내 지하경제 양성화한다
[헤럴드경제= 윤정식 기자]내리찌는 햇살에 땅거미가 지는 한 낮. 바다 냄새가 자욱한 부산시 남구 화물컨테이너 부두 부근의 C모 주유소 주변으로 건장한 사내들 10여명이 모여들었다.

한 대형화물차량이 주유소로 진입했다. 운전자가 경유를 가득 넣어달라고 주문하자 주유원이 주유를 시작한다. 그 순간 주유소 주변에 숨어있던 사내들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주유원들을 덥쳤다. 이들은 다름아닌 석유관리원 단속반.

주유원과 업주들을 진압한 단속반은 해당 주유 건에서 즉각 시료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등유 혼합형 가짜 경유임을 밝혔다. 주유원들의 점퍼 주머니에서는 차량 열쇠같이 생긴 리모트컨트롤이 나왔다. 전파탐지기로 리모컨 신호를 확인해보니 주유기 아래 설치된 이중밸브를 작동시켜 가짜경유를 주유하는 원리였다. 불법행위가 확인된 주유소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주유소 등록이 취소됐다.

▶정부, 가짜 석유와의 전쟁선포 왜?= 단속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미 업자들 사이에서 해당 주유소는 가짜 경유를 판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곳. 하지만 아무리 암행검사를 해도 이들의 불법 행각은 적발되지 않았다. 석유관리원이 보유한 가짜석유 검사 가능 차량은 모두 중소형 차량이었던 반면 이들은 화물차들을 상대로 가짜경유만 취급하던 곳이었다. 결국 일주일이 넘는 잠복 끝에 단속반 직원 한 명의 부친이 소유한 화물차량을 동원해 마지막 단속에 나서 적발이 가능했다.

가짜 석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의 실물경제에서 첫번째 표적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는 가짜 석유에 대해 전방위 공세를 가하고 있다. 경찰의 집중 단속,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이어 정유사들까지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에도 200억원대의 가짜 경유를 만들어 판 조직 9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1조원대의 유통망을 적발하기도 했다.

SK에너지는 가짜 석유의 유통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4월부터 무선주파수 인식기술(RFID)을 이용한 전자봉인시스템을 유류 수송차량에 장착해 유통의 모든 과정을 추적하기로 했다. 가짜 석유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은 이를 이용하는 피해자를 줄이는 1차적 피해복구부터 시작해 복지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로 조달한다는 큰 그림까지 포함됐다. 새 정부의 의지가 그만큼 크게 반영될 수 밖에 없는 사업인 셈이다.

엄청난 규모의 지하경제 가운데 정부가 가짜석유를 양성화의 시범 케이스로 지목한 이유가 있다. 경유는 2010년 기준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경유의 무려 28%가 가짜다. 2010년 기준 가짜 석유로 인한 탈세규모만 한국석유관리원 추정치로 1조7480억 원에 이른다. 실제 최근 적발된 한 가짜 석유 제조업체의 경우 확인된 유통 규모만 340억 원에 달했다.

▶국세청, 가짜석유 다음은 불법사채= 원유가 나지 않는 우리나라 특성상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석유에 많은 세금을 물리고 있다. 휘발유의 경우 1ℓ에 교통세 529원, 교육세 15%, 부가세 10%가 부과된다. 경유는 1ℓ에 375원의 교통세에 휘발유와 같은 교육세와 부가세가 더해진다.

결국 가짜 석유를 만들어 팔 경우 업자는 그 만큼 큰 이익을 챙기고, 석유에 부과되는 세금을 고스란히 탈루하게 되는 시장 구조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익에도 소득세 등의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고 불법을 숨기기 위해 현금 거래에 의존하고, 차명계좌로 자금을 관리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가짜 석유를 뿌리 뽑는 작업이 세수 확충과 지하경제 양성화의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국세청도 이미 지난 2011년부터 의심 업체를 선정, 집중 감시해왔다. 매입 자료에 비해 매출이 터무니없는 업체 등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단속의 성과를 낼 수 있고, 여기서 추징할 세액도 상당한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세청은 가짜석유를 시작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에 본격 나선다. 다음 표적은 불법사채업자와 고액 체납자로 설정하고 이미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 1월 28일 대통령직인수위 토론회에서 늘어나는 복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을 걷는 게 아니라 정부의 불필요한 씀씀이를 줄이고 비과세ㆍ감면 조정,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추가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매년 5조~6조원에 이르는 국세 체납액과 연 8조원 안팎의 결손처분 가운데 일부만 징수해도 상당 규모의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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